나는 초창기의 카스온라인 유저가 아니다.
하프라이프 모드는 애초에 알지도 못했었다. 그것이 카스의 기반이었다는 사실도.
베타 유저는 고사하고, 카스소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겨우 2008년일뿐이다.
그러다가 온라인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우연히 시작했을 뿐이다.
게다가 그때는 내 주변의 친구들은, 거의다 카스라는 게임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껏해야 카르마라던가, 서든어택 같은 정도였으니까,
카스 아냐고 물어보면, 그거 맥주 아니냐고 되물을 정도였으니까.
버니합이라는 기술을 알게 된 것도, 그냥 사람들이 스트넣고 점프하는 거보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유저들이 그 점프기술들을 보고 '와 버니합이다'
라고 말하니까, 나도 '아 저게 바로 버니합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물론 그쪽 사람들에게야, 쳐다보면서 양민들이 무슨 기술이든간에 버니합,버니합 하니까.
그저 피식 하고 웃음만 지었을뿐이었지만. 그래도 그사람들이 정말 대단해보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기술을 쓰는 사람들이 그저 부러울뿐.
저렇게 되고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나에게는 그러한 지인은커녕 재능 또한 없었다.
상당한 시간이 지난 몇년 후, 나는 카스온라인에서 소령을 달게 되었다.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라고 한다면, 그때까지는 카스온라인의 매력에 빠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변명하겠다.
카솟 하다 점퍼들을 보면 그저, 나도 저렇게 되야지 하고 몇번 연습을 하다가
애매한 실력을 가지고 온라인에 다시 복귀했다. 그쪽 세계와 이쪽 세계는 큰 격차가 있으니까.
'여기서라도 잘하면 이름을 날릴 수는 있겠지' 하고 자만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온라인에도 나보다 월등히 실력이 높은 유저들은 얼마든지 있다..
그때 역시 마찬가지로, 내가 아는 친구는 고작해야 실제로 만남을 통해 사귀게된 친구들뿐,
나는 여전히 친구가 적었다. 항상 온라인 상엔 나 혼자. 아니면 가끔 한두 명뿐..
친구창에는 나혼자 로그인되어있는 경우가 허다했고, 나는 오리지널도, 좀비모드도 어중떠중한 실력으로,
그냥 중간정도의 실력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때 즈음엔 이미 좀비모드가 판을 치던 때라서,
사람들은 더더욱 점프 기술에 열광을 했고.
나보다 훨씬 늦게 시작한 친구들도 어느새, 좀비모드로 유명세를 타서 점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때 즈음, 나는 킬/데스 초기화를 구매했고, 킬수를 초기화 시켜, 좀비모드에 빠져들었다.
나타나이프가 나오고 나서부터는 더더욱 가속을 해서, 좀비헌터를 따내고, 클랜에 가입하고,
포인트를 모아서 아이템을 더 사고, 더 많은 좀비를 학살하고, 더 많은 인간을 죽였다.
신이 나서 좀비모드에 빠져있는 나는 오리지널 따위 이제는 신경쓰긴 커녕,
더더욱 많은 좀비 아이템과 스킬과 좀비의 종류, 기술을 알아내고 싶어서 근질댔고.
'카스는 좀비모드 없으면 망하는거 알잖아?' 이런 망언을 날리면서도.. 좀빠 친구들을 늘려만 갔다.
또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아주 많은 시간이 흘렀다.
친구는 늘어났지만, 마음의 공허도 함께 늘어나버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난 준장이었던것으로 기억하는데, 때는 암호해독기가 판을 치던때라서
빙고판이 두번째로 업데이트 된 날이었다고 기억한다.
현질을 하고, 좀비모드의 극치라고 불리었던 볼케이노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오해하지말길 바란다. 그때는 흑룡포가 아닌 볼케이노가 甲으로 불렸다.)
볼케이노를 뽑았으나, 자랑할 친구조차 없어서. 혼자 컴퓨터 앞에서 기뻐했던것이 기억난다.
그러다가 카스온라인의 스크린샷게시판에 문득 눈이 갔다.
처음에는 업데이트날에, 시간 때우기로 몇차례 눈팅만 했다가. 댓글을 달기도 했다.
그러다가 몇명이, 요새 카스는 좀비모드만 계속 살리고 오리지널 유저는 계속 줄어들기만 한다고
불평하는 게시물이 눈에 들어와서, 홧김에 오리지널 유저들을 비하하는 말을 적어서
스크린샷 게시판에 등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저 웃음만 나온다.
그때는 분명히, 그사람들을 비웃기 위해서가 아닌,
오리지널을 포기하고 좀비모드만 열광하는 내 자신을 보고 화가 나서 나에게
한 말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게 살다가, 어느 날 본 것은,
어느덧 잠자고 있는 카스소스 1.6 이었다.
1.5는 커녕, 컨디션 제로 조차 생소했던 나는, 그냥 구매하고 오리지널 몇판만 뛴 후,
관심을 카스온라인에만 쏟아 부었던 것이다.
심지어 아이디조차 기억이 안날 정도로, 오래된 기억.
몇명의 소수 친구들과 소수의 지인들로 구성해서 즐기던.
아주 오래된. 기억.
나는 무심코 천천히 손을 뻗어 스팀을 작동시켰고.
1.6조차 큰 변화가 일어났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미난 새로운 미니 모드..점프 맵..바뀐 유저들..
하지만 바뀌지 않은 정서와 실력.
갑자기 가슴 한편이 찡해오면서, 안에서 무언가가 터지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한 플레이를ㅡ카스를 즐기고 있는 걸까'
ㅡ여태껏 지니던 카스에 대한 나의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오래전의 친구들. 아직도 남아있는 그분들의 정서.
오랜만에 들어왔으면서도 반겨주는 수많은 유저들.
오랜만의 카솟을 즐기면서, 엄청 울었던 기억이 난다.
이런 말은, 스크린샷게시판 이외에는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조차 말하지 않았다.
아직도 그때의 감정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즐거움' 이라고 생각한다.
카스온라인의 즐거움과. 카스소스의 즐거움은 물론 차이가 있지만,
지금의 다수의 유저들과 즐기는 CSO와.
과거에 즐겼던 스팀 카스 소스.
지금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는게 한가지 있다.
나는 지금 '카스'를 즐기고 있다.
지금도 기껏해야 잘 하지도 못하는 좀비모드나, 팀데스매치에서 가끔 눈에 띄지않게 활동하지만.
사람들이 몇 명 날 알아본다.
반응은 크게 나누어서 두 가지라고 생각하는데,
첫번째는 예전부터 몇번인가 나를 봐온 유저들이다.
다시말하자면, 좀빠에, 입은 거칠고, 자신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무능한 유저.
두번째는 나를 보고 '스게인' 이라고 말하시는 몇분의 유저들.
나는 어느쪽도 나 자신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굳이 한쪽으로 생각해달라고 말하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그저, 카스온라인과 카스소스를 번갈아가며 확 눈에 띄는 플레이는 많지 않은
평범한 유저로 봐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좀비모드를 즐기는 여러분께 딱... 건방진 소리 한마디만 하겠다.
오리지널도, 그만한 가치가 있는 모드다. 정말이다.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건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나같은 정서를 지녔던 유저가, 이런 말을 해도 설득력이 없다는걸 인지하고있다...
하지만, 오리지널과 좀비는 사실 큰 차이가 없다.
하는 방식의 차이와 개념의 차이는 물론 부정할 수 없지만,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간의 협동심과 즐거움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글로.. 몇명의, 단 몇명이 과거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
아니면 나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이 글로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바뀐다면, 정말 기쁠 것 같다.
쓸데없이 긴 글을 읽어주신 모든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 Ki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