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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소설1화
2010.07.08 18:47 조회 : 610

9월 2일, 일본 천황 히로히토는 오키나와에 정박 중인 미국 군함 미주리 호에서 항복 문서를 서명하였다.

그날 미국 측은 소련 측에게,

미국 측: 우리 당분간 이렇게 하자.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북쪽은 너희가 맡고, 남쪽은 우리가 맡기로 한다, 어때?

1950년 1월 12일, 미 국문 장관 애치슨은 일명 애치슨 라인을 발표하였다.

애치슨: 필리핀, 오키나와, 일본, 알류산 열도 등 이 라인을 앞으로 미국이 책임질 방어선이오!

당시 북한은 남한에 여러 차례에 걸쳐 통일 방안을 제안해 왔다.

김일성 : 유엔 이원단을 철수시키고 남북 총선거를 실시, 통일을 이루자!

그러나 이러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승만: 과인의 국가는 반공 국가다! 그러니 헛소리 그만 하거라!

6월 18일 김일성은 전군에 비밀 명령을 내렸다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밤새 줄기차게 내리던 빗줄기가 그치고 38선 일대에는 자욱한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이날 오전 4시, 대규모 병력의 북한 인민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짙은 안개를 뚫고 38선을 넘어 남침을 시작하

였다

북한의 육, 해, 공군이 일제히 침략해 왔고 일요일 새벽 단잠에 빠져 있던 국민들은 뜻밖의 포성에 깜짝 놀라 깨고

말았다.

38선을 지키던 국군은 용감히 맞서 싸웠으나 병력과 장비의 부족으로 인해 고전했다.

전쟁이 터진 직후 남한의 라디오 방송은...

라디오 방송: 오늘 새벽 괴뢰군이 38선을 넘어 남침을 했으나 용맹스런 우리 국군이 무찔러 버렸습니다! 그러니

안심하십시오!

그날 오전 10시 주한 미 대사관의 무초 대사는,

"부...북한이 전쟁을 일으켰다고 본국에 긴급 전문을 치시오!"

26일 오전 3시(한국시간), 미국의 요구로 긴급 소집된 제1차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38선의 원상 복구와 북한을 침략자로 규정하자는 미국의 긴급 결의안이 9대 1로 가결 되었습니다!"

그날 국회에 출석한 채병덕 참모 총장은,

"아군이 적군을 완전 제압했소! 여세를 몰아 5일 이내에 평양을 점령할 것이다!"

27일 새벽 2시, 이승만은 한국은행 보유금을 가지고 대전행 열차에 올랐다.

전쟁터의 국민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갈팡질팡하다가 적탄에 맞아 죽어갔다.

이승만의 목소리가 라디오 방송을 통해 서울 전역에 반복해서 울려 퍼졌다.

"지금 우리 경찰과 군대가 서울을 아주 잘~ 지키고 있으니 시민들은 조금도 동요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일부 불안을 느낀 국민들은 하나 둘씩 피난길에 올랐다.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거대한 폭음과 함께 한강 인교도가 폭파되었다.

그날 오후 3시경 북한 인민군이 서울로 들어왔다.

6월 28일부터 수원 이남 전역에서 군인과 경찰에 의해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을 당하기 시작하였다.

6월 30일, 미 공군이 평양 비행장을 폭격해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7월 1일, 김일성은 북한 전역에 '전시 총동원령'을 선포하였다.그리고 북한군은 무서운 속도로 7월 3일 한강 방어

선을 돌파, 7월 4일 수원은 거저먹고 대전이 코앞이였다.

7월 7일 열린 제3차 유엔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16개국의 군대로 유엔군이 구성되고 미국의 맥아더 장군이 사령

관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북한군은 더욱 쾌속 남진, 6월에는 경상도 일부를 뺀 남한의 전 지역을 점령했다.

북한은 점령한 지역의 농민들에게 땅을 거저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은 그 지역의 민심을 장악하고 젊은이들을 북

한군으로 만들려는 속임수였다.

낙동강을 방어선으로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지난 8월 18일 정부가 부산으로 옮겨졌다.

드디어 맥아더는 필승의 반격 작전에 들어갔다.

맥아더: 이렇게 반격에 필요한 병력이 확보 되었으니 승리는 시간 문제이오!"

맥아더의 지시로 미 함대가 며칠 동안 삼척에 폭탄을 퍼부었다

그리고 군산 역시 폭탄을 퍼부었다.

9월 13일, 갑자기 폭격의 목표 지점이 인천으로 바뀌었다.

맥아더: 진짜 작전인 인천 상륙 작전 개시!

9월 14일 까지 계속된 포격으로 인천은 폐허로 변하고 9월 15일 오전 6시경, 미군이 월미도 상륙 작전을 펼쳤다.

오전 10시, 손쉽게 월미도를 점령한 미군은 북한군을 가볍게 물리치면서 진격하여 인천, 부평, 김포에 이어 22일

에는 수원을 장악했다. 28일에는 서울을 수복하였다.

북한군이 패주하여 유엔군은 9월 30일경 38선 이남의 거의 모든 지역을 회복하였다.

중국의 주은래는 10월 2일,

주은래: 남한군이 38선을 넘는건 상관없으나 유엔군이 38선을 넘으면 우리가 북한의 유엔군이 된다는 것을 경고

하는 바이다!

10월 7일 유엔 총회에서 미국의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유엔군은 38선을 돌파해도 좋다!"

그러자 유엔군은 곧바로 38선을 넘었다.

남한군의 38선 돌파는 일주일 전인 10월 1일에 이루어졌는데 그것을 기념해 정해진 것이 지금의 국군의 날이다.

                                                   The End

     님들아 별 평가 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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