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5명의 초등학생이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고 집을 나섰다가 실종된 후, 11년6개월 만인 2002년 9월 유골로 발견된 사건.
1991년 3월26일 당시 대구성서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우철원(당시 13세)군을 비롯한 조호연(당시 12세)·김영규(당시 11세)·박찬인(당시 10세)·김종식(당시 9세)군은 집 뒤편인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와룡산에 개구리를 잡으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30년만에 부활된 지방의회 의원선거로 임시 공휴일이었던 이날 이들 어린이들은 와룡산에 오르기전 인근 마을에 사는 학교친구와 마을주민들에게 모습을 보인 것을 마지막으로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실종되자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한 채 전국을 돌았고 개구리소년들을 주제로 한 영화와 노래가 제작되는가 하면 전국 초등학생들은 ‘대구 개구리친구 찾기운동’을 펼치는 등 전국적인 관심사로 떠올랐었다.
경찰은 당시 노태우 대통령 특별지시로 대구지방경찰청 차장을 본부장으로 수사본부를 구성,와룡산 일대는 물론 전국을 이잡듯이 뒤졌다. 동원된 경찰병력만도 연 인원 31만 8천여명으로,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
전국 새마을중앙회 등 각종 사회단체들이 7백여만장의 전단을 전국에 뿌렸고 한국담배인삼공사와 기업체들도 담배갑과 상품에 실종 어린이들 사진을 인쇄,수색 작업에 동참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특별지시와 현상금 4200만원 등을 내건 노력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한 채 이들의 행적은 묘연했다.
실종 5년째인 96년 1월에는 다섯 어린이 중 한 명이 자신의 집에 암매장됐다는 주장이 제기돼 굴착기와 곡괭이 등으로 집안 화장실과 부엌 바닥을 파는 소동을 벌였으나 아무런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개구리 소년들의 실종 사건이 장기화하자 한때 '외계인 납치설' '북한공작원 유괴설' '불치병 치료용 희생설' 등 갖가지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그러던 중 실종 11년6개월 만인 2002년 9월 26일 '개구리소년' 5명의 유골이 대구시 달서구 용산동 성산고교 신축공사장 뒤편 500m 떨어진 와룡산 중턱에서 발견되었다. 수사결과 타살로 판정됐으나 현재까지 범인은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한편, 살인사건의 경우 공소시효가 15년으로 되어 있어서 2006년 3월 25일이면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후에 범인이 잡히더라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