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니지를 중심으로 -<sup>1)</sup> 박동숙/최정윤(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석사)Ⅰ. 들어가며 | 온라인 게임의 문제설정 공상과학 소설에서 가상 세계(virtual world)를 묘사하는 데서 나온 사이버 공간(cyberspace)<sup>2)</sup>이라는 단어는 이제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사이버 공간에서의 상거래, 오락, 사람들 사이의 의사전달은 전통적인 산업, 사회, 매체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요구한다. 국내에서도 인터넷 이용자 수가 천만을 넘어서면서 사이버 공간은 양적으로 빠르게 성장했다(조선일보, 2000년 1월 19일). 이와 같은 급속한 양적 성장, 즉 인터넷의 대중화와 함께 인터넷의 이용 동기도 변화하고 있다. 정보전달의 수단이라는 고유의 목적과 함께 인터넷은 새로운 오락을 위한 매체로서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게임에 함께 참여하는 온라인 게임은 최근 2년 동안 국내에서 새로운 대중적 오락의 한 형태로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sup>3)</sup> 국내 온라인 게임의 급성장의 배경으로는 스타크래프트의 대중적인 인기와 이와 함께 성장한 PC방, 그리고 국내 게임 업체의 온라인 게임에 대한 집중적인 개발을 들 수 있다. 전국적으로 100만 장 이상이 팔린 스타크래프트는 컴퓨터와 플레이어와의 게임이 아닌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게임으로 컴퓨터 게임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고, 컴퓨터 게임을 대중적인 여가의 수단으로 만들었다. 한편 스타크래프트는 전국적인 PC방의 급속한 증가를 자극했고, 전국에 걸쳐 1만 2,000개가 넘는 PC방4)의 성장과 게임 인구의 확산은 컴퓨터 게임의 산업적 가치를 부각시켰다. 이와 같은 배경 속에서 국내 온라인 게임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묘사될 정도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급속한 온라인 게임의 양적 성장과 함께 나타난 새로운 현상들은 사회적 우려의 대상이 되었다. 온라인 게임의 중독적 이용과 이에 따른 과로사, 온라인 게임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죽인 것['PK(Player Killing)'라고 불리는 행위]에 대한 보복으로 상대를 추적해서 현실에서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 게임 속의 캐릭터나 아이템을 현실에서 현금으로 매매하는 경우, 또 해킹을 통해 다른 사람의 아이템을 훔쳐 현금화한 사건들은 온라인 게임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우려의 근거가 되어 왔다. 특히 국내의 여러 온라인 게임 중에서도 가장 많은 동시 접속자 수를 기록하고 있는 ‘리니지’의 경우, 이러한 게임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지속적인 민원의 제기로 지난 6월 정보통신윤리위원회의 재심의를 받기도 했다. 온라인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과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것으로 기대하는 게임 육성론 사이에서 온라인 게임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을 검토하고 이를 진지한 학문의 대상으로서 연구하고자 하는 노력은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온라인 게임이 드러내는 문제들을 살펴보면 온라인 게임이 단지 새로운 형태의 게임 장르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임 속의 가상 아이템에 대한 현금 거래나 게임 속의 일로 인한 플레이어들 간의 분쟁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게임 속의 경험들이 사이버 공간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실의 물리적 공간으로 확장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때로 게임과 물리적 현실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 준다. 아래의 인터뷰 일부는 온라인 게임이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낸다. “게임은 게임일 뿐인데 (현실과) 착각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자기도 게임인 줄 알지만 손발이 따로 나가듯이, 자신의 캐릭터가 죽었는데 직접 찾아가서 사람들을 때리기도 해요. 물약이나 변신반지나 저희가 보기엔 다 같은 아이템이에요. 물약은 누가 가져가도 아무 소리 안 해요. 그런데 변신반지는 난리가 나죠. 경찰에 신고하고. 게임상에서 내가 누구에게 줬는데 안 돌려주는 경우 (플레이어들은) 사기라고 해요. 그러면 이 게임은 서로 죽일 수 있는 게임인데 그럼 살인죄가 성립되나요? 어떤 부분은 게임이고 다른 부분은 게임이 아닌 거죠….” 온라인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에서 자신의 캐릭터에게 일어났던 일들, 혹은 게임 세계 속에서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실제와 다름없는 현실감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 경험하는 현실감은 온라인 게임의 문자적 형태인 텍스트 머드에 대한 기존 연구들에서도 이미 주요한 연구 문제로 떠올랐던 것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텍스트 머드의 경험에 대해 별다른 주목을 하지 않았고 온라인 게임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사회적 충격으로만 받아들였다. 그런데 온라인 게임과 관련된 일련의 현상들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영향에 논란보다 이 현상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보다 본질적인 문제, 즉 다른 매체의 수용 경험과 온라인 게임의 매체 경험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문제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게임이 벌어지는 가상의 공간과 물리적 현실 공간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온라인 게임의 경험들은 이를 무엇으로 정의할 것이며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 설정을 요구한다. 텍스트 머드에 대한 포스터(Poster, 1995)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문제는 리얼리티’인 것이다. 이 연구에서는 온라인 게임을 통해 경험하는 현실감이 비록 물리적 영향력은 없지만 그 효과에서 실제와 다름없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를 가상 현실(virtual reality)로 정의하고, 온라인 게임의 어떠한 특징과 요소들이 가상적 현실감 구축과 관련을 맺고 있으며 또한 플레이어들의 어떠한 게임 행위들과 경험들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Ⅱ. 가상현실 도구로서의 머드 게임 가상 현실이라는 단어는 HMD(head-mounted display)와 데이터 글러브(data glove) 등의 테크놀로지를 연상시킨다. 흔히 가상 현실이라는 것은 시각과 청각과 신체의 움직임 등 완전히 신체감각을 장악함으로써 물리적 현실 공간과 다른 또 하나의 공간을 경험할 수 있게 하는 환경 혹은 장치를 말한다. 이와 같은 정의에 따른다면 기껏해야 마우스와 키보드라는 입력장치와 모니터 상에 나타나는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가진 온라인 게임을 가상 현실 도구라고 부르기에는 게임의 장치들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감각적 현실감을 제공하는 가상 현실 장치들이 하루가 다르게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을 고려해 본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래픽은 커녕 문자만으로 이루어졌던 텍스트 머드에 대한 연구에서 머드가 가상 현실을 제공해 준다는 기존의 논의들은 가상 현실의 본질적인 경험을 구성하는 것이 감각적 차원의 현실감에 제한되지 않는다고 보고 이에 근거해서 머드 게임에서의 가상 현실 경험을 설명하고자 했다.1. 가상 현실 가상 현실은 ‘사실은 그렇지 않으나 마치 ~인 듯한’의 의미를 지닌 ‘가상(virtual)’과 실제적인 사건이나 일의 상태를 의미하는 ‘현실(reality)’이라는 두 개의 모순된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가상이라는 개념이다. 컴퓨터에서 가상 메모리라는 것은 하드웨어를 추가하지 않고 컴퓨터의 데이터 저장 공간을 확장시킨다. 가상 디스크는 하드디스크처럼 쓰일 수 있지만 실제의 기계 디스크가 갖는 물리적 한계를 지니지 않는다. 이와 유사하게 가상 현실이라는 것은 물리적 한계를 갖지 않고 현실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TV나 영화에서 그래픽으로 만들어 낸 자연 재해들, 혹은 괴물들과 어떻게 다른가? 무엇이 가상 현실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나?(Heim, 1993) 헤임(Heim, 1993)은 가상 현실의 특성들을 1)사용자가 스크린 위의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여서 건물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등의 상호 작용성, 2)몰입, 3)여러 사람이 동시에 하나의 가상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망(net)으로 연결된 커뮤니케이션, 4)로봇 등을 이용해서 실제 세계에서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에게 물리적 영향을 미치는 원격 현전(tele-presence) 등을 들고 있다. 라브로프(Lavroff, 1994)는 가상 현실 도구의 특징으로 몰입(immersion), 탐색운행(navigation), 조작(manipulation)의 세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몰입은 참여자가 단지 창을 통해 그것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가상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몰입이 참여자로 하여금 그 속에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면 탐색운행은 참여자가 컴퓨터가 만들어 낸 사이버스페이스를 마음대로 탐험하고 상호작용하며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느낌이 바로 그 세계를 실제인 것처럼 만든다. 가상 현실 시스템에 현실감을 더해 주는 세 번째 요소인 조작은 가상 세계 환경을 조작할 수 있는 사용자의 능력을 말한다. 조작은 참여자가 가상의 문을 열거나 가상의 적을 쏘아 맞힐 수 있도록 한다(Lavroff, 1994). 이와 같은 가상 현실들의 특징들을 보면 가상 현실이 감각적 차원에서의 경험이라고만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가상 현실은 우리가 줄거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줄거리가 우리의 행동에 맞춰지는 세계”(Lavroff, 1994)라는 표현에서처럼 가상 현실의 세계는 참여자들의 가상 대상에 대한 조작을 통한 상호작용과 그 세계에서의 움직임을 통해 그 세계에 있다고 느끼는 몰입, 그리고 다른 참여자들과 함께 그 가상 세계의 경험을 공유함으로써 구성된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가상 현실은 플레이어의 감각적 경험이라기보다는 인식에 의해서 완성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상 현실의 구현이 감각적 모의(simulation)를 위한 테크놀로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로 하여금 물리적 실체가 없는 속에서도 실제 일어난 일로 인식하게끔 하는 요소와 과정이라는 주장의 예는 1980년대 LucasArts에서 개발된 하비타트(Habitat)에서도 찾을 수 있다. 현재의 온라인 게임과 유사한 하비타트는 많은 동시 참여자들이 채팅과 게임을 즐길 수도 있고 종교, 경제활동 등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가상 환경이었다. 이 하비타트는 당시 특수 안경과 장갑 등을 이용한 감각적 차원의 가상 현실의 테크놀로지보다 새로운 가상 세계를 만들어 낸 가상 현실의 도구로서 주목을 받았다(Rheingold, 1993).5) 하비타트 뿐 아니라 문자만을 이용하는 텍스트 기반의 머드 게임도 가상 현실 도구로서 혹은 가상 현실의 과도기적 단계로서 학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Poster, 1995; Bromberg, 1996). 2 . 가상 현실 경험으로서의 머드 바틀(Bartle)은 머드(MUD), 특히 게임형 머드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감정적으로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근거는 자신의 게임 속의 캐릭터에게 자아를 투영시키고 게임 속의 그 캐릭터에게 일어난 일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느낄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Rheingold, 1993, p.155). 이처럼 머드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이 자신의 캐릭터에게 일어난 일을 자신의 경험으로 받아들이는 현상, 즉 머드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주는 현실감은 머드 연구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였다(Ito, 1997; Bromberg, 1996). 브롬버그(Bromberg, 1996)는 가상 현실은 다 감각적인 시뮬레이션 체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철학적 경험이라고 보고 머드 게임과 IRC(internet relay chat)의 경험을 가상 현실 경험으로 정의했다. 브롬버그는 IRC와 다양한 MUD 게임의 사용자들에 대한 인터뷰를 통한 연구에서, 머드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게임 세계에 몰입해서 물리적 세계의 플레이어의 몸을 잠시 망각하고 배고픔까지도 잊는 상태(disembodiment)를 경험한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몰입 속에서 플레이어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머드 게임의 참여자들은 의식의 대체 상태(altered state)6)에 이른다고 보았다. 그리고 브롬버그는 이와 같은 가상 현실의 경험은 테크놀로지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개인의 인식과 상상, 판타지에 근거해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그리고 결국 이와 같은 가상 세계에서의 상호 작용적 참여는 우리들이 물리적이고 물질적 세계에 대해 반응하는 방법까지 바꿔 놓는다고 설명한다(Bromberg, 1996). 포스터(Poster, 1995) 역시 가상 현실은 참여자들을 직접 그 속에 위치시키며 참여자들은 자신들의 조작을 통해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언어와 이미지를 통해 형성된 상상적 단계의 리얼리티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경험을 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텍스트 머드를 이와 같은 가상 현실의 과도기적 형태로 보았다(Poster, 1995). 또 실시간이라는 표현이 녹음 등으로 인해 다른 종류의 시간들이 가능하게 되었을 때 이것들과 구별하기 위해 쓰였듯이 가상 현실이라는 표현은 현실이 여러 개로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표현으로 보았다. 머드 게임에서의 가상 현실의 경험을 감각적 차원에서의 경험이 아닌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참여자들의 심리적 경험으로 보았을 때 온라인 게임은 어떠한 요소에 의해서, 어떤 과정을 통해 플레이어들에게 가상적 현실감을 경험하게 하는가? 이 연구는 가상적 현실감을 형성하는 요인과 과정들을 가상 현실 구축 기제로 칭하고 이를 ‘리니지’<sup>7)</sup>라는 국내 온라인 게임의 사례를 통해서 밝혀 보고자 했다. 리니지는 가장 많은 동시 접속자 수와 회원 수를 가지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온라인 게임인 동시에 아이템, 캐릭터의 현금거래, 현실 폭력, 해킹을 통한 아이템 절도 등 게임 경험이 물리적 현실로 나타나는 여러 사례들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되어 온 게임이기도 하다. 리니지라는 온라인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은 어떤 기제를 통해 가상 현실을 경험하게 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해서 실제 플레이어들의 게임 경험을 통해 살펴보고자 했다. 자연적 상황에서의 플레이어들의 게임 행위에 대한 관찰과 심층적 인터뷰는 게임 경험에 대한 직접적인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실제 플레이어의 게임 경험과 더불어 리니지라는 온라인 게임이 어떠한 게임 행위와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가, 라는 측면도 분석의 대상에 포함시켰다. 브룩만(Bruckman, 1992)8)이 머드 게임에 대한 연구에서 머드 게임의 설계가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형성하는가에 중요한 영향을 **다고 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머드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어떤 환경을 제공해 줄 것인가를 크게 결정짓는다. 따라서 게임 설계자와의 인터뷰와 플레이어들의 행위에 대한 관찰, 연구자의 게임 경험을 통해 플레이어의 가상현실 경험과 관련 있는 게임의 구조적 기제들을 함께 밝혀 보고자 했다.Ⅲ. 연구 방법1. 온라인 게임의 텍스트와 수용자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 대해서 실제 플레이어들의 게임 경험과 게임의 구조적 요소들로 나누어서 분석하려고 하는 것은 기존 매체 분석에서 텍스트와 수용자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하는 것과 유사한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특별히 게임 텍스트 분석과 수용자의 텍스트 활용 혹은 텍스트 이용 경험으로 지칭하지 않은 것은 온라인 게임이 텍스트와 수용자로 쉽게 나뉘어 파악하기에 곤란한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에서의 게임 플레이어들은 게임 텍스트를 수용하고 이용할 뿐 아니라 게임 텍스트 자체를 만들어 가는 창조자이기도 하다. 이것은 의미생산 논의에서의 플레이어의 의미생산 행위와는 다른 것이다. 즉 온라인 게임의 플레이어들은 텍스트로부터 의미를 생산하는, 또 다른 생산으로서의 소비가 아니라 게임 자체를 생산한다. 온라인 게임에서 한 플레이어가 한 어떤 행동은 즉시 게임의 일부가 된다. 게임의 시작과 끝이 있는 다른 컴퓨터 게임과 달리 온라인 게임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게임 세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이미 고정된 게임이 제공되어질 수 없다. 따라서 온라인 게임에서의 게임 텍스트는 단지 게임 서비스의 주체에 의해 설계되고 구축되어진 환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고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의 행위와 이전에 게임에 참여했던 모든 플레이어들의 행동의 결과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플레이어들의 게임 행위나 경험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온라인 게임이기 때문에 가지는 게임의 특징과 게임이 어떠한 설계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은 플레이어의 게임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컴퓨터 게임이기 때문에 가지는 일반적 특징과 온라인 게임 설계자에게 의해 설계되고 제공되어지는 온라인 게임의 요소들을 게임의 구조적 특징이라고 부르고, 이 중에서 플레이어의 현실감 구축과 관련된 요소들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게임 설계자와의 개인 면담과 플레이어들의 게임 행위에 대한 관찰, 게임 매뉴얼, 그리고 연구자의 게임 탐색을 바탕으로 자료를 수집했다. 그리고 이는 앞서 살펴본 라브로프(Lavroff, 1994)와 헤임(Heim, 1993)이 지적한 몰입, 조종, 탐색, 상호작용성의 가상 현실을 이루는 요소들이 게임 설계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가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2. 실제 플레이어들의 경험에 대한 연구 방법 온라인 게임은 지속적인 게임 세계 안에서 수많은 플레이어들 간의 다양한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수많은 플레이어들 간의 게임 속 실제 상호작용들을 연구자가 예측하고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온라인 게임의 지속적 특징 때문에 게임을 인위적으로 처음부터 시작하게 하거나 끝나게 할 수 없고, 게임 속의 특정한 사건을 똑같이 반복하게 할 수 없다. 연구자가 예측할 수 없는 게임 속의 변화되는 상황 혹은 사건은 연구의 부정적인 요소가 아니라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가 역시 중요한 연구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온라인 게임이라는 연구 대상의 특징과 플레이어들의 게임 경험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하는 연구라는 연구 목적에 따라서 다양한 변화를 포용할 수 있고, 실제 일어나고 있는 자연스러운 상황을 연구하기에 적합한 연구 방법이 선택되어야 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리니지’라는 게임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온라인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제공하는 현실감에 대한 이해를 얻고자 하는 데에 있다. 이와 같은 사례 지향적 특성과 플레이어들의 경험에 대한 구체적이고 전반적인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연구의 목적, 그리고 앞서 기술한 연구 대상의 특징에 근거해서 질적 연구 방법이 선택되었다.<sup>9)</sup> 이 연구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실제 플레이어들을 중심적인 인터뷰, 관찰 대상으로 삼았다. 그리고 인터뷰와 직접적 관찰 이외에 다양한 문서 자료를 수집했는데 이는 인터뷰와 직접적 관찰을 한 현장연구의 연장 혹은 보충적 수단으로 이용된 전자메일과 전자메모와 같은 자료와 보다 많은 플레이어들의 경험과 의견을 알기 위해서 수집한 경험담, 일기, 토론 의견 등의 자료들이었다. 인터뷰와 관찰을 행한 플레이어들은 모두 10명이었으며 연령, 레벨, 게임을 하는 장소, 다른 게임을 한 경험 등에서 각각 차이가 나는 플레이어들을 포함했다.<sup>10)</sup> 다음의 〔표〕는 정보제공자와 인터뷰와 관찰을 통한 자료들의 목록이다. Ⅳ. 리니지의 가상 현실 구축의 기제 리니지상이나 홈페이지에 공지가 없는 한 매주 수요일 오후 11:00까지 본토 제재소에서 한다. 대략 1개월에 한번 현실 모임을 갖는다- 마패혈맹의 혈맹소개 중에서 http://herakles.interpia98.net/~mape/ 플레이어들간의 게임 경험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리니지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의 게임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게임'과 '현실'이란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 혈맹의 모임도 게임 내에서의 만남과 현실모임을 구분하고, 게임 아이템의 현금 거래에 대한 비판적인 의견을 말하기도 한다. "온라인 게임은 단지 게임일 뿐이다. 재미를 위해 하는 것이지 그것에 너무 빠져서 게임 속의 아이템이나 캐릭터를 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중략) 현실과 가상을 구분 못 하는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글 제목: 현거래? 현실 구분 못하나? 게시번호: 11 유니텔, 리니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현금거래에 관한 토론 중에서) 이처럼 가상 공간으로서의 게임과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현실은 잘 나뉘어지는 대립적 공간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플레이어들의 경험 속에서는 게임과 현실이 분리되어 존재하지 않는다. 게임 속에서 분쟁이 생겼을 때 플레이어들은 ‘현실로’ 만나보자고 위협하기도 하고, 게임 속 플레이어 캐릭터간의 일들을 마치 실제 플레이어들 사이에 일어난 일처럼 느끼기도 한다. 게임 속 대화 PL6 : 44。님 제 5투망 돌려 주세요. 44。: 절대 안 돌려 줄 테니 즐겜하세요. PL6 : 안 돌려 주심 겜방 차자 갈테니 알아서 하세여. PL6은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귓말로 44。의 게임방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게임 관찰 4-2 중에서) 온라인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사이버 공간과 물리적 현실 공간 자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속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겪은 어떤 일들을 효력면에서는 실제적이지만 동시에 아무런 물리적 실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가상적인 현실로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리니지에서 이와 같은 가상적 현실을 플레이어들에게 느끼게 하는 기제는 무엇인가에 대해서 게임의 구조적 요인들에 대한 분석과 플레이어들의 경험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1. 가상 현실을 구축하는 리니지 게임의 구조적 요인들 온라인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의 게임 참여와 게임 행위들이 게임을 만드는 내용이 되지만 이는 게임 설계자의 설계에 따라 만들어진 인위적 장치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게임 플레이어에 의해서가 아닌, 게임 제공자에 의해서 설정되어 있는 게임의 모든 장치들을 게임의 구조적 요소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게임의 요소들이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현실감을 느끼게 하는 주요한 기제로서 작동한다. 1) 물리적 현실 세계의 특징 모의-게임의 현실 요소들 중세를 배경으로 기사, 마법사, 요정이 되어 몬스터를 죽이고 아이템을 얻고 경험치를 쌓아 레벨을 올려 게임 속의 강자가 된다는 리니지의 설정은, 사이버 공간 속에 물리적 현실 세계의 제약을 뛰어넘는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플레이어들은 물리적 현실의 구속에서 벗어나 마법을 쓰고 칼을 휘두르며 무기와 방어구만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리니지의 세계를 경험한다. 그러나 게임 곳곳에는 환상적 요소와 더불어 물리적 현실 세계의 특징들이 구현되어 있다. 먼저, 게임은 물리적 현실에서와 유사한 공간적 메타포를 취한다. 크게 리니지는 섬과 본토로 구성되어 있고, 그 사이에는 바다가 있으며, 플레이어 캐릭터가 섬과 본토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해저 터널이나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섬과 본토에는 마을과 숲, 사막 등이 존재하고, 마을 안에는 상점, 제재소 등이 존재한다. 이와 같이 물리적 현실에서 익숙한 공간적 메타포의 이용과 함께 리니지에는 게임 화면의 명암으로 조절되는 낮과 밤이 존재하고, 밤 동안에 주변을 밝히기 위해서는 램프를 켜야 하는 등 시간적 메타포도 존재한다. 공간과 시간의 재구성과 함께 리니지에서는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운 가상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무게라는 물리적 특징이 모의되어 나타난다. 캐릭터의 ‘무게 게이지’라는 것을 두어서 플레이어 캐릭터가 한꺼번에 많은 아이템을 가지고 있으면 무게 게이지가 빨갛게 되어 움직일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고, 각 아이템들의 무게가 설정되어 있다. 무게뿐 아니라 마을, 상점, 바다, 숲, 성 등의 공간도 물리적 세계의 특성들을 바탕으로 설계되어 있다. 또, 캐릭터의 배고픔이란 요소가 있어서 물리적 현실 세계의 인간의 경험을 모의한다. 이처럼 게임 설계에는 물리적 현실 세계의 특성이 게임 세계에서 구현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은 공간적·시간적 메타포의 이용과 무게, 배고픔과 같은 요소와 더불어 플레이어들 간의 채팅 채널도 게임 속에서의 물리적 거리를 고려해서 설정되어 있다. 한 화면 안에 위치한 플레이어 캐릭터들 간의 채팅은 바로 플레이어 캐릭터 위에 입력한 문자가 나타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화면에 나타나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 있는 플레이어 캐릭터 사이의 대화는 귓말이나 전체 채팅, 혹은 외치기와 같은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sup>12)</sup> 그리고 이러한 게임의 요소들은 플레이어가 게임 시스템과 혹은 다른 게임 플레이어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이와 같은 상호작용적인 게임 행위 속에서 현실감을 경험한다. 즉,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에 설정되어 있는 요소들을 앎으로써 게임의 현실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실제 게임 속에서 어떠한 설정에 따라 게임을 행함으로써, 설정된 요소들의 제약을 겪음으로써 현실감을 느낀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는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와의 거래에서 한 번에 많은 아이템을 옮기려고 하다가 무거워서 실패하기도 하고, 사냥을 하다가 물약이 떨어지면 물약을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에게서 사고, 물약을 들고 다닐 수 있기 위해 무거운 아이템들을 팔기도 한다. 플레이어에게 현실감을 주게 되는 게임의 요소들은 이처럼 플레이어의 게임 행위들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상호작용적이며, 이러한 점이 플레이어들에게 자신이 그 안에서 행동하고 있다는 현장감을 만들어 낸다. 2) 아바타 ‘아바타’는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 속에 몰입하게 하는 중요한 기제로서 제공된다. ‘리니지’에서는 기사, 마법사, 요정, 군주라는 각각의 클래스가 있고, 이 중에서도 성별과 지혜, 힘, 민첩성 등의 특성의 수치를 플레이어가 선택하고 아바타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자신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현실에서 플레이어의 마우스 조작 행위와 게임 속에서 캐릭터의 움직임이 일치하면 플레이어는 캐릭터의 움직임을 통한 게임에서 시각적 이미지의 변화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즉, 아바타를 조종함으로써 섬, 본토, 마을과 던전 등의 공간적 메타포로 구성된 게임 속의 공간을 자유롭게 탐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플레이어 캐릭터는 다른 게임 속의 대상들과 달리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의 의지를 실어나를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게임 속의 모든 상호작용은 캐릭터를 매개로 일어나게 되어 있다. 키보드를 이용한 채팅도 캐릭터의 이름을 빌려서 나타나며 캐릭터가 위치한 일정한 지역의 제한을 받기도 한다.<sup>13)</sup> 또한 게임 내의 다른 플레이어의 캐릭터나 대상들에 대한 상호작용적 행위도 캐릭터의 움직임(걷고 달리고 칼로 치고 주먹으로 때리고 마법을 쓰고 아이템을 줍는 등의 행위들)을 통해서만 실현되게 되어 있다. 이와 같은 게임 내에서의 상호작용적 행위의 결과에 따라 아바타, 플레이어의 캐릭터는 경험치와 레벨, 성향 등이 변화한다. 이와 같이 아바타에 대한 조종과 이를 통한 게임 공간의 탐색, 그리고 다른 게임 대상들과 상호작용적 행위들은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게임 속에 있는 것과 같은 몰입의 상태로 이끌어 현실감을 경험하게 만든다. 그러나 위의 두 가지 요소 혹은 과정들이 플레이어들에게 가상적 현실감을 경험하게 하는 기제로서 작용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온라인 게임의 가상 현실 경험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왜냐하면 온라인 게임 뿐 아니라 싱글 플레이어 모드의 게임에서도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조작과 탐색, 게임 대상과의 상호작용을 가능하도록 하여 게임에 몰입하게끔 하고 있으며(권병수, 1997), 컴퓨터 게임 중에서는 리니지보다 기술적으로 이를 보다 더 훌륭하게 구현하는 게임들도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1인칭 슈팅 게임들은 플레이어의 시점 변화와 3D의 입체적 화면의 이미지 변화를 아예 일치시킴으로써 플레이어와 게임간의 경계를 허물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 속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박상우, 2000). 이에 비하면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마우스로 이동시키고 간단한 동작들을 행하게 함으로써 현장감을 느끼게 하는 리니지의 몰입 기제는 그리 위력적인 것이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또 RPG나 어드벤처 게임에서의 캐릭터는 플레이어에 의해 조종되고, 이를 통해 플레이어가 게임 속 공간을 탐색하고, 게임 대상들과 상호작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온라인 게임의 아바타라는 플레이어의 분신 캐릭터와 유사한 기능을 한다. 그렇다면 게임에 현장감을 더하고 플레이어로 하여금 게임 속에 몰입하게 하는 위의 두 요소들은 온라인 게임인 리니지만이 갖고 있는 현실감 구축 기제라고 볼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온라인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강한 현실감을 구성하게 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온라인 게임 고유의 특징적인 요소들이 작용한다. 3) 리니지 게임 세계의 지속성 온라인 게임에는 한 판(session)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플레이어는 스스로 게임 자체를 시작하거나 끝낼 수 없고, 다만 존재하는 게임 세계에 참여하며 게임의 내용을 만들어 가게 된다. 따라서 플레이어가 자신이 참여했던 게임의 어느 시점에서 게임을 멈춘 뒤 저장을 하고 다시 그 시점에서 게임을 시작하는 행위는 불가능하다. 온라인 게임에 참여하는 수백 명, 많게는 수천 명의 플레이어들의 행동을 한 플레이어가 임의로 멈추거나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행동뿐 아니라 현재의 온라인 게임은 과거 게임에 참여했던 플레이어의 행동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온라인 게임의 특성은 온라인 게임이 지속적인 게임 세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특정한 게임 플레이어가 참여하고 있거나 혹은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게임 세계는 지속된다. 게임 세계의 지속성은 물리적 현실 세계가 갖는 물리적 시간의 흐름을 공유하게 하면서 게임 세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또 한편 게임 세계가 지속된다는 것은 플레이어들끼리 관계가 지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이 되고, 플레이어들 사이의 다양한 관계와 활동들이 지속되면서 온라인 게임 세계의 사회적 특성들이 발전되어 간다. 온라인 게임은 지속적인 게임 세계 속에서 플레이어들 간의 상호작용이 활발히, 그리고 계속해서 일어날 수 있는 요소들을 만듦으로써 온라인 게임 속에서의 사회적 특성들이 발전될 수 있도록 한다. 이런 점에서 온라인 게임의 설계는 일종의 가상 사회의 설계와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된다. 4) 사회적 관계를 위한 게임의 장치들 온라인 게임에서는 플레이어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채널들을 제공한다. 리니지에서는 일반 채팅, 전체 채팅, 귓말, 혈 채팅과 같은 플레이어간의 실시간의 채팅을 가능하게 하는 채널들이 있다. 온라인 게임의 커뮤니케이션 채널들은 플레이어간의 즉각적인 피드백을 가능하게 하고 활발한 상호작용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 줌으로써 플레이어들이 서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기본적인 도구가 된다. 따라서 온라인 게임 설계에서 플레이어들 간의 상호작용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플레이어에게 다른 플레이어와 함께 게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리니지에는 플레이어들이 자신만이 게임에 있다는 고립감을 해소해 주기 위해 전체 채팅이라는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있다. 이를 통해서 같이 게임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대화뿐 아니라 현재 게임을 하고 있는 플레이어 모두에게 내용이 전달될 수 있다(송재경, 개인면담, 2000년 2월). 온라인 게임에는 플레이어간의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하게 하고 사회적인 단위로까지 발전시키기 위한 장치들이 있다. 리니지에서는 ‘혈맹’을 통해 플레이어들이 게임 내에서의 소집단을 이루고 서로 협력하고 공동의 목표를 갖도록 하고 있다. 리니지의 게임 설계에서 리니지의 게임 설계에 근거한 게임의 목표는 게임 속의 성을 점령하는 것이다. 그런데 혈맹만이 공성전을 통해 성을 차지할 수 있고 다른 혈맹과 혈전을 벌일 수 있다. 온라인 게임에는 이처럼 플레이어들 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는 기본적인 장치들을 제공할 뿐 아니라, 플레이어들 간의 사회적 관계에서 생겨나는 갈등과 분쟁의 해결장치들도 마련해야 한다. 리니지에서는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를 죽이는 행위를 한 캐릭터에 대해 캐릭터의 성향치가 바뀌고, 상행위의 제약, 경비병에 의한 처벌 등의 제약을 주고, 이 캐릭터를 죽이거나 혹은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를 죽이지 않는 캐릭터에게 보상을 줌으로써 게임 내의 부정적인 행위들을 플레이어들이 조절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온라인 게임, 리니지는 게임이 가지는 요소들과 온라인 게임이 갖는 특징들을 구현해 냄으로써 가상적 현실감을 경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제공해 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요소들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실제 플레이어들의 게임 행위 속에서, 즉 게임 시스템과 게임 플레이어 사이의 상호작용과 플레이어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비로소 실제적인 위력을 가진다. 실제 플레이어들이 게임 시스템 속에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어떤 상호작용을 하는가는 어떻게 온라인 게임의 플레이어들이 게임 속에서 가상적 현실감을 경험하게 되는가를 밝혀 줄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이다.2. 플레이어들 사이의 상호작용1) 아바타, 플레이어의 연장(extension) 앞서 말했듯이 온라인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경험하는 현실감은 자신의 아바타에게 일어난 일을 실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인 것처럼 느끼거나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를 실제의 다른 플레이어로 취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로 플레이어들의 게임 경험, 특히 자신의 아바타가 죽는 PK 경험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진술은 아바타와 플레이어와의 관계를 드러내보여 준다. "게임을 하다 보면 그 캐릭터가 난 거 같아요. 죽은 거 보면 내가 죽은 거 같아요. 실제로 느낌이. 게임에 빠져서 하다 보면은… 그런데 누가 자기를 죽여 봐요. 그럼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인터뷰3) "쫓아오던 마법사와 앞에 있던 요정이 저를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우선 경험치가 다운되고 난쟁이족 철투구와 마법 망토, 짧은 장화, 난쟁이족 방패를 겹쳐서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삶의 희망을 잃었습니다"(리니지 일기 4) "저를 키워 줄 사람을 찾아다녔어요. 그때는 이름이 새파라면 가장 센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이름이 빨간색인 사람을 보게 되었어요.… 그 사람에게 키워 달라고 했지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검이 저를 내리치더니 저는 어느새 땅에 누워서 이야기를 하고 있더군요"(리니지 일기1) 게임을 하는 순간, 플레이어들에게 아바타, 즉 플레이어 캐릭터들은 게임 회사에서 만든 작은 그래픽적 창조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플레이어와의 동일시를 통해 인격적인 존재가 된다. 플레이어 자신의 캐릭터는 ‘나’의 연장(extension)이 되고,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는 ‘타인’의 연장이 된다. 플레이어 캐릭터와 실제 플레이어들 사이의 동일시는 앞서 본 바와 같이 플레이어가 아바타에 이름을 붙이고 이를 조종함으로써 게임 공간을 탐색하고 게임 속에 있다고 느끼는 현장감을 느끼는 과정과 자신의 캐릭터를 장기간 성장시켜 나가는 과정, 그리고 아바타를 통한 다른 플레이어와의 동시적 커뮤니케이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플레이어들은 이처럼 게임 속의 플레이어 캐릭터를 현실에서 존재하는 플레이어의 연장으로 보기 때문에 플레이어들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는 플레이어들에게 현실과 비슷한(like real) 경험이라기보다 실제(real) 경험이 되는 것이다. "처음 형을 만난 것은 최세림이라는 아이디였는데, 형에게 제가 키워 달라구 했지요. 형은 알았다고 하면서 저를 키워 주었어요. 그리고 검과 방어구를 저에게 빌려주더라구요. 저를 믿어 주는 형에게 너무 고마운 마음이 생겼어요. 그래서 저도 다시 형에게 아이템을 모두 돌려주었어요"(리니지 일기 1) "저는 저렙이고 약하고 그랬었는데,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우연찮게 초보자를 도와주는 사람들을 게임 중에서 만났어요. 요즘엔 그런 사람들을 보기가 참 흔치 않은데 그때만 해도 좀 있었거든요. 그 사람들 따라다니는 통에 재미가 붙었어요"(인터뷰2) 빵장수: 어젯밤에 (집에서 게임을 하는데) 아는 형이 변신반지 필요하다고 해서 줬거든요. 그런데 지금 게임에 들어왔는데 귓말도 차단하시길래. 빌려 가신 거라면 필요해서. PL5 : 그 사람 의정부 살아. 난 연락처 몰라. (중략.) 그러니깐 옆에 있을 때 빌려 줘야 할 거 아냐.(관찰3 중에서) “머드는 일종의 게임인가? 아니면 게임과 비슷한 현실의 연장인가? 분명 서로 치고 죽이는 부분은 단지 게임의 일부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그 사회적 측면은 게임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sup>14)</sup>는 말처럼 리니지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에서 자신의 캐릭터가 몬스터에게 죽음을 당한 것에 대해서는 단지 게임으로 생각하지만, 게임 속에서 알고 지내던 다른 플레이어가 자신의 아이템을 빌려간 다음 돌려주지 않는다면 플레이어들은 이를 게임의 일부가 아닌 실제로 받아들인다. 자신의 아바타가 떨어뜨린 게임 아이템을 가져간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를 찾아내서 그 플레이어와 한 시간도 넘게 채팅을 통해 돌려 달라고 사정을 해보기도 하고 게임방을 찾아가겠다고 위협해 보기도 한다(리니지 관찰 4-2). 이처럼 게임 속의 캐릭터 뒤편에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에서의 플레이어의 존재는 게임 세계와 현실(물리적) 세계 사이의 구획을 위협하고 게임 속 경험에 대한 플레이어들의 해석에 계속 영향을 **다. 게임 속의 캐릭터를 현실에 존재하는 실제 플레이어와 일치시킴으로써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의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와의 상호작용에 대해서 현실로 인식하는 것이다. 캐릭터를 통한 다른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은 온라인 게임이 기존의 매체 수용 경험과 다른 독특한 현실감, 즉 가상 현실의 경험을 제공해 주는 중요한 기제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플레이어들은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어떤 사회적 관계들을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어떻게 플레이어들이 느끼는 현실감과 관련을 맺고 있는가? 2) 사이버 공간 속의 작은 사회, 온라인 게임 공동체 리니지에서 플레이어들은 키보드를 이용한 채팅이라는 언어적 수단과 주로 마우스로 조작되는 캐릭터의 행동이라는 비언어적 수단을 통해 다른 플레이어와 상호작용을 하며 게임 세계를 경험하고 만들어 간다. 플레이어와 플레이어간의 채팅은 정보 전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친구, 형과 동생, 가상의 애인과 배우자와 같은 관계 맺음으로 발전한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에서 몬스터를 사냥하면서 서로 대화를 나누고 도우면서 친해지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레벨이 높은 사람이 레벨이 낮은 사람과 함께 사냥을 하면서 사냥하는 방법도 가르쳐 주고, 강한 몬스터로부터 보호해 주며 같이 다니는 것을 온라인 게임 플레이어들은 ‘키워 준다’라고 표현한다. 상대를 키워 주거나 도움을 받는 과정에서 플레이어들은 더욱더 많이 자신을 드러내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해 간다. "색종이와 친분을 다지면서 서로 나이를 묻는 시간이 왔다. 나는 중 2니깐 '저 나이 어려여. 15인뎅…' 했더니 '엉. 나는 19이얌' 이랬다. 휴 같은 10대라서 살았다. 그 후 나는 색종이를 보고 생종이 엉아~~~ 이렇게 부른다"(리니지 일기 2) "나이가 몇 살이고, 직업이 뭐고, 오늘 생활 뭐 했고 그런 거… 이런 평소생활에 대해서 다 이야기하고"(인터뷰 5) 플레이어들의 관계에는 긍정적인 관계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템을 거래하면서 상대방을 속이기도 하고, 상대 플레이어 캐릭터가 가진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 PK를 하면서 서로 욕설이 오가기도 하며 ‘원수’, ‘적’을 만들기도 한다. 연구자: 44*고 이집트*하고의 관계는? PL 6: 원수죠. (중략.) 복수해야지. 이처럼 온라인 게임에서의 플레이어와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이란 단순한 반응(reaction) 차원의 상호작용이 아니라 게임 속에서 친구, 형/동생, 애인, 배우자, 적과 같이 다양한 관계들을 만들어 나가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처럼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들이 맺는 관계들의 특징은 현실에서 맺을 수 있는 관계들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때로 게임 속에서 만들어지는 플레이어들 사이의 관계는 게임 설계가 제공해 주는 범위들을 넘어서서 현실 사회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모의(simulation)하기도 한다. 리니지의 게임 설정에서는 애인 만들기나 결혼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플레이어들은 게임 안에서 애인, 배우자를 만들어 낸다. 결혼식장도 존재하지 않는 데도 아데나(게임상의 화폐)와 물약 등을 깔아 놓고, 어떤 플레이어는 주례를 맡고, 어떤 플레이어들은 하객이 되어 눈송이를 뿌리는 등의 마법과 물약을 이용한 시각적인 효과를 통해 축하해 주고, 결혼을 한 플레이어 캐릭터들은 게임 속의 한적한 공간으로 신혼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이처럼 플레이어들은 현실 사회에서의 관계 유형과 이에 따른 행동 양식을 게임 속에서 모의한다. 물론 혈원과 군주라는 현실에서 없는 관계도 존재하지만 이것 역시 리더와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물리적 현실 세계에서의 관계의 행동 양상을 따른다. 리더인 군주에게는 책임감이나 통솔력 등이 요구되고, 조직 구성원들은 리더인 군주의 말에 따라야 한다.[그림] 리니지의 결혼식 장면 www . lineage . co . kr의 스크린 샷 모음 중에서 "8시까지 오라는 군주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8시까지 열심히 레벨을 올렸다…. 때는 8시, 슬경기장으로 모이라는 군주님 말씀에 나는 서둘러 마을로 갔다… (중략)… (혈전에 진 군주는) 우리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모두 제 탓입니다. 제가 물약도 못 사주고 제 욕심만 채웠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순간 혈원들은 모두 혈비를 걷자고 했다. 그러나 군주는 자기가 아이템을 팔아서라도 혈원들 물약과 아이템을 사준다면서 신경쓰지 말라고 했다. 군주님의 말에 나는 감탄했다. 내가 전에 가입한 혈은 물약만 사주고 지면 물약값만 버렸다고 하면서 우리에게 욕을 해댔다. 그런데 이 군주는 오히려 자기 탓으로 돌리다니…"(리니지 일기 5) 실제 플레이어들 간의 다양한 상호작용과 이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들은 게임을 가상 사회의 하나로 만들어 간다. 플레이어들은 게임을 현실과 비슷하게 다룸으로써, 즉 게임 속에서도 현실과 비슷하게 행동함으로써 게임은 실제 사회와 같은 특성들을 갖게 된다. 명성,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 권력, 개인 혹은 집단간의 갈등, 규범 등이 생겨나고 이와 같은 리니지의 사회적 특성들로 인해 리니지는 더욱 현실감 있는 공간으로 작용하게 된다. 먼저 리니지 내에서 플레이어의 게임 내의 행위, 영향력에 따라 생기는 사회적인 평판, 가상 명성(virtual reputation)<sup>15)</sup>을 가진 캐릭터들의 이름은 플레이어의 캐릭터가 어떻게 가상 공동체 내에서 정체성을 고정시켜 가는가를 보여 준다. "사부1이라고 있었어요. 유명했던 피케이가. (중략.) 나두 걔한테 두 번 죽었는데 진짜 무서웠어요. 그 다음에 사부 따라한다고 스피드란 놈이 피케이했는데 그 다음은 알아주지도 않았죠. 사부는 뒤치기 안 했고 공주하고 왕자는 안 쳤어요. 나름대로 멋있게 한 거죠"(인터뷰 6) 플레이어는 캐릭터를 통해서 어느 정도 고정된 정체성(fixed identity)를 갖게 되면서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보다 더 강한 캐릭터를 갖는 것, 즉 레인골드(Rheingold)의 표현대로 자신이 속한 가상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권력을 획득하는 것이 게임의 목표가 된다. "왜 레벨 올렸겠어요? 괴물 더 잡으려고? 다른 사람들한테 힘을 과시하려고 레벨을 올렸을 거 아녜요"(인터뷰 6) "강해지고 싶고 유명해지고 싶고 그렇죠. 유명해지고 싶고 세지고 싶고 웬만한 아이템 다 갖고 싶고 그런 거 아니면 인간이 아니죠"(인터뷰 3-1)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레벨, 좋은 아이템 즉 좋은 무기와 방어구는 리니지에서의 중요한 권력의 자원이 된다. 이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가에 따라 고레벨과 저레벨로 나뉘며, 고레벨의 캐릭터와 좋은 아이템은 다른 플레이어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고, 캐릭터의 힘은 곧 그 소유자인 플레이어의 공동체 내에서의 사회적 위세로 이어진다. 이런 점으로 인해 플레이어들 사이에는 고레벨과 친해지려 하고 자신보다 레벨이 낮은 플레이어를 무시하는 등, 고레벨과 저레벨에 대해 각기 다른 태도가 형성된다. "고렙은 잘 해주고 저렙은 무시하고"(인터뷰 1-1) "렙 40까지 올리고 싶어요. 애들이 알아서 받들어 주게 되고"(인터뷰 1-3) "리니지에서 ‘님님’ 하면 부르는 소리거든요. 절대 대답 안 해요. 웬만한 사람 아니면 절대 대답 안 해요. 호칭 렙이고 유명하고 렙 높은 사람이면 대답을 해주겠죠. 서로 알고 지내면 서로 돕고 좋으니깐. 초보들은 알아봤자 내게 도움이 전혀 안 돼요"(인터뷰 3-1) 이와 같은 플레이어들의 태도에 의해 캐릭터의 레벨과 아이템은 플레이어들에게 단지 센 몬스터를 잡기 위한 기능적 도구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를 지니는 권력의 자원이 된다. 레벨과 아이템과 더불어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서 누구와 친한가, 어떤 혈에 들어 있는가 하는 것도 중요한 권력으로 작용하므로 고레벨의 플레이어와 친할 수 있는 사교성도 플레이어의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된다. 한편, 리니지에는 플레이어들의 행동 규범이 존재하는데 이는 게임 설계상의 규범과 사용자들이 만들어 낸 것으로 나뉘어질 수 있다. 게임 설계상의 규범은 사용자가 게임 설계에서 권장되는 것을 행했을 때 이에 대한 보상을 주고, 그에 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도록 함으로써 행동의 규칙을 만들어 낸다. 게임 설정을 통한 규범 이외에 게임 속에서는 사용자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사용자 룰 역시 리니지의 규범으로 작용한다. 대표적인 사용자 룰의 예를 들면 먼저 몬스터를 공격한 사람이 그 몬스터에서 나오는 아이템을 차지하는 ‘선(先)’<sup>16)</sup>과 게임 내의 특정 지역을 특정한 레벨 이상일 경우만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렙 제한’<sup>17)</sup>이란 것이다. 이처럼 플레이어들은 게임 안에서도 현실 사회의 관계 양상에 따라 행동하면서 게임 속에서는 다른 플레이어보다 더 강한 캐릭터를 갖고 싶은 욕구, 보다 나은 아이템을 갖고자 하는 소유의 욕망, 구성원들이 만들어 내는 행동의 규범, 위계적 사회 관계와 같은 사회적 특징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요소들로 인해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이 참여하는 게임을 하나의 사회로 묘사하고 로잔 스톤(Roseanne Stone, 1992)의 표현대로 ‘정상적인’ 리얼리티의 범주를 통해 가상적 리얼리티를 코드화한다.<sup>18)</sup> 리니지 플레이어들은 레벨, 무기, 방어구를 ‘힘’으로, 자신과 친한 고레벨의 플레이어를 ‘빽’이나 ‘인맥’으로,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를 PK하지 않고 사냥만으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을 ‘소시민’으로 묘사하고, 저레벨들끼리 도와 주는 모습에 대해 ‘약한 사람들이 착한 게 세상’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 가상 세계라도 현실 세계와 마찬가지입니다. 힘 있고 | 레벨, 무기, 방어구 돈 있고 | 아데나 있고 빽 있고 | 자신과 친한 고렙들 능력 있고 | 말재주, 상술, 처세술 시간 있으면 | 하루에 리니지 하는 평균시간 초보들한데 고수로서 존경받고 증오의 대상이 되고 동경의 대상이 되고 하는 것입니다"(글제목: 피케는 리니지의 일부, PK 토론글 게시번호: 125, 유니텔 리니지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고레벨의 플레이어 캐릭터는 저레벨보다 많은 힘과 발언권을 가지며 자신들의 힘을 바탕으로 더 많은 아이템을 거래와 사냥을 통해 획득하는 반면, 저레벨들의 캐릭터들은 쉽게 PK를 당하고 아이템을 뺏기며 살아가는 것에 대해 ‘약육강식’, ‘적자생존’ ‘빈익빈부익부’로 표현하기도 한다. "약육강식, 기득권(을 위해서) 어떻게든 강해지려는 아이들, 돈을 벌기 위해서 얼마 벌지도 못하면서 악착같이 게임하는 아이들, 초보 때 고수한테 당해서 복수한다고 열심히 게임하는 아이들. 리니지는 현실을 빼다 박은 게임이에요"(인터뷰 6) 플레이어들의 물리적 현실을 살아온 경험과 가치는 가상 공간에서 행동 판단의 기준이 되기도 하고 가상 공간에서의 경험을 해석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이 게임이라는 가상 공간을 물리적 현실과 비슷하게 다룸으로써 이 두 가지는 좀더 가까워지고 서로를 반영하며 실제로 비슷해진다(Roseanne Stone, 1992). 실제 플레이어들 사이의 상호작용적 게임 행위는 게임을 사회적 특성을 가진 공동체로 만들었으며, 이러한 사회성은 다시 플레이어들이 느끼는 게임에서의 현실감을 강화한다. Ⅴ. 연구의 결과 및 논의 온라인 게임, 리니지는 게임 공간에서의 게임 행위가 종종 물리적 세계의 행위로 이어져서 사회적 우려와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에서 보다 빨리 고레벨이 되기 위해서 아이템을 현금으로 사기도 하고, 게임 속의 아이템 분쟁이 현실에서의 폭력적 해결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은 문제들은 단지 게임이 끼치는 부정적 영향의 문제가 아니라 플레이어들이 게임 속에서 어떠한 경험을 하고 있는가, 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즉, 어떤 게임 행위에 대해서는 ‘단지 게임’으로, 그리고 어떤 경험에 대해서는 ‘실제’로 해석하는 플레이어들의 게임 속 경험의 특징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글에서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사이버 공간 속의 경험이 물리적 현실 사회와 어떻게 다른가, 라는 것보다 어떻게 플레이어들이 게임 속에 일어난 일을 실제 일어난 일로 느끼는가, 라는 질문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와 같이 플레이어로 하여금 가상적 현실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와 과정들을 가상 현실 구축 기제라 하고, 이를 ‘리니지’라는 국내 온라인 게임을 통해 게임의 구조적 요인과 플레이어들 간의 상호작용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게임 설계자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설계되고 구성되는 게임 시스템은 플레이어가 게임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게임 시스템은 게임과 플레이어의 상호작용을 고려해서 설계되며, 플레이어가 게임 속에 있다는 현장감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기본적인 장치들을 제공한다. 리니지에서 이는 1)게임에 공간적·시간적 메타포를 부여하고 무게, 배고픔과 같은 물리적 요소들을 배치하여 게임의 현실감을 구성하는 것과 2)아바타를 이용해서 플레이어가 이를 조종하여 게임 공간을 탐색하게 함으로써 몰입과 현장감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3)플레이어들로 하여금 게임을 실재하는 어떤 세계로 인식하게 하는 게임 세계의 지속성, 4)플레이어간의 사회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커뮤니케이션 채널들과 혈맹 등의 요소들이다. 그러나 게임 설계 혹은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게임의 현실감을 주기 위한 장치들과 이와 플레이어들의 상호작용 외에 온라인 게임의 현실감을 이루는 요소는 바로 온라인 게임의 사회적 특성이다. 실제 다른 플레이어들과의 직접적이고 다양한 상호작용과 이로 인해 생겨나는 복잡한 사회적 관계들,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사회적 위계, 권력관계, 규범과 같은 사회적 특징들이 바로 그것이다. 플레이어들은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 캐릭터들을 실제 플레이어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캐릭터와 플레이어를 일치시키는데, 이와 같은 게임 플레이어 캐릭터와 실제 플레이어간의 동일시가 온라인 게임의 사회적 특징을 발전시키는 출발점이 된다. 플레이어 캐릭터와 실제 플레이어 사이의 동일시에 의해서 플레이어들은 온라인 게임의 사회적 측면을 게임이 아닌 실제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은 자신이 경험하는 게임 세계를 하나의 사회로 보고 이를 실제 사회와 비슷하게 다룸으로써 온라인 게임의 사회는 실제 사회와 더욱 비슷해지게 된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현실 사회의 긍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사기, 폭력, 다른 사람보다 강해지고 싶은 욕구 등의 부정적 측면까지 나타나게 된다. 온라인 게임의 위와 같은 기제들이 플레이어에게 영향력 면에서는 실재하는 강한 현실감을 제공해 준다면, 그리하여 사이버 공간 속의 가상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험을 제공해 준다고 한다면, 이제 남은 논의는 사이버 공간 속의 가상 사회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가야 하는가, 라는 문제다. 리니지에서 현실의 욕망이 드러나는 등 게임과 현실이 너무나 닮아 가는 것에 대해 “게임이 현실과 같다면 굳이 그곳을 선택할 이유가 없어진 것 아니냐”는 비판도 존재한다(박상우, 2000). 이와 같은 비판은 가상 공간을 물리적인 제약과 현실 사회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운 환상의 공간, 대안적 공간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바람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헤임(Heim, 1993) 역시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가상 공간은 현실 공간과는 달라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사이버 공간에서 드러나는 부정적인 현상들은 사이버 공간의 설계를 바꿈으로써 나타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렇다면 부정적이라는 판단과 설계 변경은 누구에 의해서 결정될 수 있는가?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은 이미 개인적인 꿈을 실현하는 사이버 공간만이 아니다. 그곳은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현실과 비슷하게 다룸으로써 어느덧 현실과 비슷해져 버린 곳이며, 꿈이 상업화된 곳이고, 때로는 사회의 압력과 정부의 통제의 대상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리니지가 만드는 사이버 공간은 현실보다 나은 공간이 아니라, 아이템에 대한 소유 욕구와 다른 플레이어 캐릭터에 대한 폭력적인 태도가 지배하는 디스토피아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리니지는 “현실에 포획된”(박상우, 2000) 게임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의 플레이어와 컴퓨터 게임이 구성하는 자폐적 즐거움 대신, 다수의 플레이어들이 만들어 가는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에서의 플레이어들은 적극적으로 현실 세계를 모의하고 이를 통해 가상 현실을 체험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그리고 이때 모의되는 현실 세계의 모델은 플레이어들이 몸담고 있는 현실 사회일 수밖에 없다. 리니지와 같은 온라인 게임은 대안적 사회를 만들어 간다기보다 물리적 현실을 가까이 끌어당기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 게임은 물리적 현실 세계가 아닌,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진다는 조건만으로 유토피아가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리니지는 사이버 공간에서의 대안성은 과연 무엇이고, 이는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 것인가 하는 보다 큰 질문을 던져 준다고 할 수 있다. 1) 이 연구는 2000년도 두되한국21 핵심 분야 사업에 의해 지원되었음. 2)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는 가상 공간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러나 가상 현실(virtual reality), 가상 세계(virtual wor- ld)에서의 가상(virtual)과의 혼돈을 피하기 위해 사이버 공간으로 표기한다. 3) 1998년 약 23억 원 수준의 온라인 게임의 전체 시장 규모는 1999년 240억 원으로 성장했으며, 2000년 온라인 게임 시장의 규모는 1,200억 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넷 파워진〕 2000년 3월호. “온라인 게임 전성시대”, 〔전자신문〕 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