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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Z는 허접한 좀비물이 아니야 ㅠㅠ
2009.05.14 17:07 조회 : 112
Lv. 1 Tocryll커피 strWAview:21| 작성자 게시물 더보기

대한민국: 비무장지대


(한국 국정원 부원장인 최홍철은 북쪽의 가파르고 메마른, 뚜렷한 특징이 없는 풍경을 손으로 가리켰다. 인적이 끊긴 토치카(방어 진지), 색이 바랜 깃발과 수평선 양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녹슨 가시철조망만 없었다면 캘리포니아 남부로 착각할 만한 곳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 아무도 모르죠. 그 전**을 격퇴하는 데 북한보다 대비가 더 잘된 나라는 없었어요. 한강의 북쪽, 동해와 서해와 남쪽(그는 비무장지대를 가리켰다.) 국경을 지상에서 가장 철통같은 요새로 만들었으니까. 이곳이 산악 지대라 방어하기도 쉽다는 건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산이 거대한 군산 인프라로 벌집같이 됐다는 건 선생도 모르시겠죠. 북한 정부는 1950년대 미군의 폭격 작전에서 혹독한 교훈을 배웠고, 그 이후로 국민들이 안전한 곳에서 다시 전쟁할 수 있는 지하 시스템을 만드느라 무지 고생했어요.

북한 사람들은 모두 중무장을 했고, 전투 능력으로 치면 이스라엘 군대가 울고 갈 수준이었죠. 현역 군인이 남녀 합쳐 100만 명이 넘었고, 거기에 예비군이 500만이었어요. 전체 인구의 4분의 1을 너끈히 넘기는 병력에다, 전 국민이 태어나서 한 번씩은 기초 군사 훈련을 받죠. 그리고 군사 훈련보다 더 중요하고 이런 전쟁에 가장 필수적인 것을 갖추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초인적인 수준의 국가 기강이었죠. 북한 사람들은 성장하는 내내 자신이 존재하는 유일한 이유는 국가, 혁명, 위대한 수령 동지에게 봉사하기 위해서이며 그 밖에는 무의미하다는 세뇌를 받았어요.

남한 사람들이 살던 세계와는 극과 극인 셈이죠. 남한은 개방된 사회였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죠. 국제 무역만이 우리의 살길이었으니까. 우리는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개인주의 사회였고 시위와 대중적인 소요도 겪을 만큼 겪었어요. 아주 자유롭고 동시에 분열된 사회였기 때문에 대공포 시절에는 창 독트린도 간신히 실행했죠. 이런 내부적인 위기는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북한 사람들은 정부가 집단 학살 수준의 기아를 야기했을 때조차 반항하는 시늉을 하느니 차라리 아이들을 잡아먹는 쪽을 택한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아돌프 히틀러가 부러워할 만한 수준의 복종이라고 할까요. 이 사람들에게 총이나 돌을 쥐여 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맨손으로 다가오는 좀비들을 가리키면서 “싸워!”라고 명령하면 꼬부랑 할머니에서 꼬맹이들까지 모두 그렇게 했을 겁니다. 북한 사람들은 한국 전쟁이 끝난 후로 전쟁을 대비해 계획하고, 준비하고, 전투태세를 취하도록 길러졌습니다. 만약 우리가 처한 대 참사에서 살아날 뿐 아니라, 승리하기 위한 나라를 발명해야 한다면 그 나라는 북한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 되겠죠.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요? 위기가 시작되기 약 한 달 전에, 부산에서 첫 번째 발병 사례가 보고되기 전에, 북한이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대면서 모든 외교적인 관계를 끊어 버렸어요. 북한과 남한 양쪽을 잇는 유일한 육상 접속로인 철도가 왜 갑자기 끊겼는지 설명도 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만나지 못한 북한에 사는 친지들과의 상봉을 애타게 기다리던 우리 국민들의 꿈을 박살내면서 관료적 절차 문제라는 군색한 변명만 하더군요. 그 외엔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죠. 항상 내세우는 ‘국가 안보’ 문제라고 매정하게 내치더군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는 북한의 이런 태도가 전쟁의 서곡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았어요. 북한이 전쟁 위협을 할 때는 항상 같은 식으로 행동하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우리 것이든, 미국 것이든, 어떤 위성 데이터에도 적대적인 의도가 감지되지 않았어요. 군대 이동도 없었고, 항공기의 연료 보급도 없었고, 배나 잠수함 배치도 없었어요. 뭔가 있었다면 비무장지대에 배치된 우리 군대가 상대편 군인들의 숫자가 줄어드는 것을 눈치 챘다는 정도죠. 우리는 그 군인들, 국경 수비대를 모두 알고 있었어요. 우리는 몇 년에 걸쳐 그 군인들의 사진을 찍고, 그들에게 뱀눈이나 불독 같은 별명을 붙여 줬고 심지어 우리가 추정한 그들의 연령, 배경, 개인적인 삶에 대한 서류까지 작성해 놨죠. 그런데 그들이 가 버렸어요. 북한에서 은폐한 참호와 방공호 뒤로 사라져 버렸죠. 우리의 지진 표시계도 마찬가지로 조용했어요. 만약 북한에서 땅굴을 파거나 비무장지대 반대편에 차량을 집결했다면 국립 오페라단의 노래를 듣는 것처럼 크게 들렸을 텐데.

비무장지대를 따라 남한과 북한이 대면 협상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가 판문점입니다. 우리는 판문점의 회의실을 공동 관리하고 있고, 탁 트인 안마당에서 남북 군인들이 몇 미터에 걸쳐 서로 상대를 마주 보며 보초를 서고 있습니다. 이 군인들은 교대조로 바뀌는데. 어느 날 밤 북한 파견대가 병영으로 들어간 후, 보충 부대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병영 문이 완전히 닫히고 불이 꺼졌죠. 그리고 다시는 그들을 볼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북한 스파이들의 남한 침투가 완전히 끊겼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북한에서 온 스파이는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정기적으로 남한에 왔습니다. 대부분 스파이들은 알아채기 쉬웠죠, 유행이 지난 옷을 입거나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생필품의 가격을 묻는 식으로 행동했죠. 그런 스파이들을 자주 체포했는데, 질병이 퍼지기 시작한 후로 스파이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더군요.


북한에 잠입한 남한 스파이는 어땠나요?


우리의 모든 전자 감시망이 끊긴 것과 동시에 우리 스파이들도 모두 사라졌어요. 내 말은 우리를 불안하게 했던 무선 소통이 없었다는 게 아니라 소통 자체가 아예 없었다는 겁니다. 하나씩 모든 일반과 군 채널이 폐쇄되기 시작했어요. 위성 이미지에서 보이는 논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숫자가 예전보다 줄었고, 도시 거리를 활보하는 통행인들의 숫자도 줄었고, 전에는 한 번도 없었던 일인데, 많은 공공사업 프로젝트에 참가한 ‘자원’ 노동자들의 숫자도 줄었더군요. 

국내 상황을 봤을 때 북한 미스터리는 우리의 불안감을 증폭시켰어요. 그때는 서울, 포항, 대구에 이미 질병이 발발한 상태였죠. 목포 시민들은 이미 대피시켰고, 강릉은 격리됐고, 미국 욘커스식의 전투를 인천에서 치렀고, 그 와중에도 우리 사단 병력의 최소 반을 북쪽 국경에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상황이 더 악화됐죠. 대다수의 국방부 사람들은 평양이 남한에 쳐들어오고 싶어서 안달이 났고, 삼팔선을 넘어 천둥처럼 치고 내려오기 위해 우리의 최악의 순간이 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죠. 우리 정보계 사람들은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일축했죠. 북한에서 우리의 최악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이미 쳐들어오고도 남았을 거라고 설명했죠.

대한민국은 국가 전체가 붕괴되기 직전이었습니다. 일본식의 재이주 프로그램을 위한 계획이 비밀리에 틀이 잡혀 가고 있었죠. 은밀하게 파견된 팀들이 캄차카 반도(러시아의 북동 시베리아)에서 적당한 곳을 찾고 있었죠. 창 독트린이 효과를 ** 못했더라면, 몇 개의 부대가 더 박살나고, 몇 개의 안전지대가 더 무너졌다면…….

아마 우리가 이렇게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북한 덕분인지도 모릅니다. 그게 아니라면 북한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살아난 걸지도 모르고요. 우리 세대는 사실 북한을 위협적인 세력으로 본 적이 없어요. 내가 지금 말하는 사람들은 민간인들,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로 북한을 정체되고, 기아에 시달리는, 실패한 나라로 보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세대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서 자랐거든요. 우리가 유일하게 두려워했던 건 독일식 흡수 통일로 과거 공산주의자였던 수백만 명의, 집 없는 사람들이 공짜 원조를 바라며 남한에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전 세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죠. 우리 부모님과 조부모님들 말입니다. 북한 침략의 망령을 지고 다녔던 사람들, 언제고 공습경보가 울릴지 모르고, 조명이 흐릿해지면, 은행원들, 교사들, 택시 기사들이 무기를 집어 들고 조국을 지키기 위해 싸우라는 부름을 받게 될지 모른다는 점을 알고 있는 사람들 말입니다. 이들은 항상 정신적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았고, 결국엔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국가적인 충성심을 고무시켰습니다.

나는 그때까지도 북한에 원정대를 보내자는 주장을 펴고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안 된다는 대답만 들었죠. 할 일이 산더미라고 그러더군요. 모든 게 뒤죽박죽이었죠. 국제적으로 지켜야 할 의리도 있었고, 제일 중요한 것으로 규슈에 보낸 우리 난민들을 본국으로 송환시키는 문제가 있었죠. (콧방귀를 뀌었다.) 일본인들이 우리에게 신세 한 번 크게 진 거죠.

뭐 정식 정찰대를 보내 달라고 한 것도 아니었어요. 헬리콥터 한 대나 어선 한 척만 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판문점만 열어 주고 내 발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요. 그러다 부비 트랩이라도 건드리면 어떻게 할 건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반박하더군요. 만약 그게 핵무기면 어떻게 할 텐데? 만약 네가 지하 도시의 문이라도 열어 버려서 2300만 명의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면 어떻게 할 건데? 그 사람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었습니다. 비무장지대에 어마어마한 양의 지뢰가 설치되어 있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었죠. 지난달 북한 영공 근처를 날던 화물 수송기 한 대가 지대공 미사일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 발사 장치는 자동화된 모델로 전 인구가 이미 전멸했을 때를 대비해서 북한 사람들이 고안한 보복성 무기였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북한 사람들은 지하 단지로 대피한 게 틀림없었습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 지하 단지의 크기와 깊이를 우리가 크게 오판한 거죠. 아마 그들의 ‘위대한 수령 동지’가 서양에서 들여온 독주와 미국 *** 테이프를 보면서 뿅 가 있는 동안 북한 주민 전체가 지하에서 끊임없이 전쟁 프로젝트를 수행하느라 여념이 없는 건지도 모르죠. 전쟁이 끝났다는 걸 그 사람들이 알고는 있을까요? 그 지도자가 그들이 알고 있는 과거의 세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또다시 거짓말을 한 걸까요? 북한 지도부로서는 좀비 출현이 ‘호재’였을 겁니다. 맹목적인 복종을 토대로 세운 사회에서 고삐를 바짝 조이기 위한 구실이 됐을 테니까요. 북한의 위대한 수령 동지는 항상 살아 있는 신이 되고 싶어 했는데 이제 국민들이 먹는 식량뿐 아니라 그들이 마시는 공기까지 지배하고 거기다 지하의 인공 태양빛까지 지배하면서 그의 비틀린 환상이 마침내 실현된 건지도 모릅니다. 아마 원래 계획은 그랬는데 뭔가 끔찍하게 어긋난 건지도 모르죠. 파리 지하에 있었던 ‘두더지 도시’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 번 생각해 봐요. 거기서 일어난 일이 북한에 전국적인 규모로 일어났다고 하면 어떨까요? 아마 이 땅굴 속에서는 2300만 명의 좀비들, 어둠 속에서 으르렁거리면서 풀려나기만 기다리고 있는 수척해진 시체 로봇들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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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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