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변찮은 무기 하나 없이, 가냘픈 기간제 무기에 의지해 공방에 서 본적 있는가?
이 이야기는 황근출 해병님에게 뜨거운 전우애를 받고 얼마 지나지 않은 이야기다.
내 방 창문 사이로 들어오는 차가운 칼날바람,
박자를 조금씩 바꾸며 귓전에 울리는 하모니움 소리,
이따끔 들리는 이름모를 처자의 보이스...
1년 전 신규 겨울 이벤트, 눈앞에 펼쳐진 이름 모를 새롭게 출시된 신규 맵,
새벽 두 시의 공방...
서로 다른 소리들이 어두운 수평선과 뒤섞이자, 어느덧 의식은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졸리냐"
웬만한 과금러보다 수집률이 1.5배는 높은 박철곤 해병님의
낮고 울리는 보라색 채팅이 어둠을 가로질렀다.
"아닙니다!"
처절한 세 자리수 레벨만큼이나 절박한 나의 채팅.
스타체이서 AR을 움켜쥔 방한장갑이 파르르 떨렸다.
"아까 맞은데는 괜찮나?"
방금 전 공방에서 이어진 선임들의 점수셔틀로 온몸엔 시퍼런 멍이 가득했지만 내색할 순 없었다.
"괜찮습니다!"
"괜찮긴 짜식이"
"..."
정적을 깬건 타탁 거리는 라이트닝 퓨리 소리였다.
퓨리를 두 번 차징후 장전하시고는 내 앞에 무심코 던지시고 말씀하시길.
"써라"
"괜찮습니다."
"써"
노르스름한 퓨리의 전기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탄창이 반쯤 타들어갔을까. 박 해병님은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 선임들이 널 왜 때렸다고 생각하나?"
"제가 아직 공방에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아니다"
"제가 기합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아니다"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급한 고민 끝에 다시 말을 이어가려는 찰나, 박 해병님이 입을 열었다.
"사랑..."
"죄송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십시오"
"진부한 표현이지만 다 널 사랑하기 때문이다!"
박철곤 해병님의 목소리에 묘한 떨림이 있었다.
"널 때리며 점수를 얻는 선임도, 이모션으로 모욕하며 널 도발하던 선임들도
결국 다 널 사랑하기 때문이다. 해병대의 가장 중요한 정신이 뭐라고 생각하나"
"전우애 입니다!"
"맞다. 아쎄이든 병장이든, 해병의 모든 행동은 전우애에서 나온다.
너를 킬하는것도, 이모션을 취하는 것도 모두 전우애라는 뜻이다."
영하 20도의 칼바람이 부는 겨울밤이었지만 나만의 방, 공방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니, 그 순간 내 눈시울만큼은 빵빵한 넥슨 본사의 난방기보다도 뜨거웠다.
박철곤 해병님이 손가락을 내 볼을 쓸어내리며 눈물을 닦았다.
"진한 전우애... 앞으로 이 눈물을 기억해라"
나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눈을 들어 박철곤 해병님과 눈을 맞췄다..
우리는 서로의 전우애를 느꼈다...
"네 인벤토리를 보여다오. 전우애가 새긴 영광의 무기들 말이다."
나는 황급히 인벤토리를 열고 잘 보이시게끔 남은 기간 순서로 무기를 정렬시켰다.
그리고 박철곤 해병님이 잘 볼 수 있도록 내 인벤토리를 정리했다.
인벤토리를 보시는 박철곤 해병님의 눈길이 뜨거웠다.
"훌륭한 전우애다. 역시 우리 모두는 무적해병이다."
시퍼렇게 멍이 든 스코어 전적 위로 겨울 바람이 할퀴어 지나갔다.
"춥겠군, 전우애를 통해 다시 올려야 겠어."
박철곤 해병님은 블레이즈 노바 프로모션 기간당시에 쟁여둔
드레드 노바 기간제를 패밀리 창고에 욱여넣었다.
순간적으로 치솟은 전우애에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기간제 라는것이 두려웠지만 마음을 다잡고
패밀리 창고에 들어가 박철곤 해병님의 전우애를 듬뿍 받았다.
온갖 소리가 뒤섞인 공방에서, 이름 모를 킬 로그 사이로 전우애가 쓰여져가는 소리가 끼어들기 시작했다.
싸워서 이기고 지면은 죽어라 헤이빠빠리빠 헤이빠빠리빠!
나와 박철곤 해병님은 서로를 지키고 아끼며 전우애를 통해 좀비들을 곤죽을 만들었다.
박 해병님의 리드는 점점 빨라지고, 우리의 전우애는 이윽고 이 거대한 공방에서 파도를 일으키는듯 했다.
따흐흑 따흐윽
부라보! 부라보! 해병대!
전우애에 의해 뜨거워진 공방을 플레이 해본 적 있는가?
만약 당신 곁에 진정한 전우애를 지닌 카서가 없었다면
당신은 아직 이 게임의 아름다움을 본적이 없는 것이다.
아직도 공방에서 디바인 블래스터로 스코어 보드를 박살낼때면 생각난다.
그날 공방에 묻어둔 나와 진짜 해병의 뜨거운 이야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