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언제나 어려운 것이다.
형제가 내게 죄를 지어 그를 미워하기는 쉬어도
진심으로 용서하기는 불가능하다.
하느님의 도움 없이 이뤄질 수 없다.
오늘 예수님의 말씀대로라면
다른 형제를 데리고 가서
권고하며 타이르라고 하신다.
왜 그러셨을까.
서로 다른 텍스트인데...
이것은 공통이다.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둘이나 셋이 그분의 이름으로
모인 그 자리에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복음을 곱씹다보면
형제가 내게 잘못하여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자
나와 동행한 다른 형제는
하느님의 도움을 가져오는 역할을 하나?
하는 묵상에 머물게 한다.
예수님은 우리 가운데 계신다.
그 현존은 모두 다르지만
내가 형제로 인해 괴로울 때에
그 괴로움과 고통에 함몰되지 않게 도와주는 분이다.
동행을 해주려는 형제로 그런 도움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우리모두 한계가 많은
부족한 사람들이기에
서로의 역할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겠나.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나도 함께 해주려는 삶을 깊여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