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크 더 블러드 1권 -성자의 오른팔-
서 장 Intro
제1장 마족특구 Demon Sanctuary
제2장 감시자가 있는 풍경 Here Comes The Watchdog
제3장 한탄의 무녀 She's Crying
제4장 성자의 오른팔 The Right Arm Of The Sint
종 장 Outro
후 기
서 장 Intro
한여름 밤의 도시....
그 도시는 이토가미 섬이라고 한다. 태평양에 떠 있는 작은섬. 탄소섬유와 수지와 금속, 그리고 마술로 조성된 인공섬이다.
머리 위의 하얀 달이 도시를 둘러싼 바다를 차갑게 내리비추고 있었다.
시각은 이미 자정에 가깝고, 이제 곧 날짜가 바뀌려고 한다.
불빛이 꺼진 빌딩이 유리창이 가로등의 빛을 반사해서 마치 깨어진 마법 거울처럼 보였다. 역 앞의 번화가는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의 바다. 심야 영업을 하는 패밀리 레스토랑, 노래방, 편의점. 거리에는 아직도 젊은이들이 넘쳐 나고 있었다.
태평하게 웃고 떠들면서, 그들은 이따금 하잘것없는 소문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저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무의미한 화제. 흔하디 흔한 도시 전설. 제4진조. 이 도시의 어딘가에 있다고 하는 흡혈귀의 소문에 대해서.
진지한 어조로 남자가 말했다. 제4진조는 불사에 불멸. 단 한명의 혈족 동포도 두지 않으며, 지배를 원하지도 않고, 오로지 재앙의 화신인 열두 권수(眷獸)만을 거느리며 인간의 피를 빨고, 살육하고, 파괴한다. 세상의 이치에서 벗어난 냉혹하고 잔인한 흡혈귀라고. 과거에 수없이 많은 도시를 멸망시킨 괴물이라고.
지루한 표정으로 여자가 말했다.
....흐응, 그래서?
이토가미 섬 마족 특구. 이 도시에는 괴물 따위는 드물지않다.
설령 그것이 세계 최강의 흡혈귀라 할지라도.
그 무렵, 소문의 제4진조는 주택가로 통하는 인도를 걷고 있었다.
그는 하얀 운동복의 후드를 눌러 쓰고, 편의점 비닐봉지를 덜렁거리는 젊은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나이는 십오륙 세가량. 평범한 고등학생처럼 보이는데, 실제로 그는 고등학생이었다.
마치 늑대의 체-모처럼 앞머리의 색소가 약간 옅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포함해도 딱히 눈에 띄이는 외모는 아니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아주 평범한 소년이었다.
피곤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의 걸음걸이는 나른했다. 편의점 비닐봉지에 들어 있는 것은 한정품 아이스크림 두 개. 한밤중에 난데없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말을 꺼낸 동생쯤에게 닦달을 당해서 근처 편의점까지 물건을 사러 나온 고등학생이다, 라는 분위기다.
거리에는 소년 말고도 행인이 있었다.
선명한 색상의 유카타를 차려입은 젊은 여자 두 명이다.
그녀들은 소년보다 조금쯤 연상이었다. 아직 학생 분위기가 남아 있지만, 고등학생에게는 없는 섹시함이 있다. 이따금 보이는 옆얼굴도, 화장은 짙지만 제법 미인이었다.
소년은 두 명과 꽤 떨어져서 걷고 있었다. 다만 익숙하지 않은 전통 나막신 때문인지 그녀들의 걸음걸이는 상당히 느렸다. 서로의 거리는 점차로 좁혀졌다. 밤바람에 실려 그녀들의 향수 냄새가 풍겼다.
소년의 앞에서 작은 비명 소리가 났다.
그녀들 중 한 명이 턱에 발이 걸려 균형이 무너지며 넘어졌다. 유카타의 옷자락이 벌어지며, 엉덩방아를 찧은 그녀의 허벅지까지 노출됐다.
소년은 엉겁결에 멈춰 서서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그의 시선이 빨려 들어간 곳은 벌어진 유카타 자락이 아니라, 그녀들의 목덜미였다. 유카타 옷깃과 틀어 올린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가느다란 목덜미. 하얀 맨살.
어두침침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도 푸르게 비치는 혈관의 위치가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소년은 숨을 삼키고 그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렬한 갈증이 엄습한 모양으로, 그는 단 한 번 목을 작게 울렸다. 오른손으로 눈가를 가린 이유는 붉게 물든 홍채를 감추기 위함인가.
요기와도 유사한 이상한 기운이 그의 온몸에서 조용히 퍼져 나갔다. 소녀를 지르며 웃고 있는 여자들은 아직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윽!"
그리고 다음 순간, 소년은 자신의 코끝을 누르고 나직이 한 숨을 지었다.
그는 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손가락 사이로 심홍색 액체가 흘러내리고 잇었다. 입속에 뜨뜻한 느낌이 전해졌다. 코피다.
달콤하고 쇳내가 나는 피의 냄새.
터진 코피를 거칠게 훔치면서, 소년은 잰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그의 뒤로는 여자달의 웃음소리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는 한여름의 달이 떠 있었다. 미지근하고 눅눅한 바닷바람이 도시 전체를 불고 지나갔다.
".....좀 봐달라고."
누구에게라도 할 것도 없이, 소년은 혼잣말했다. 코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었다.
한여름의 밤.....
한밤중의 신사 경내를 화르륵거리는 화톳불이 비추고 있었다. *배전에 비쳐들어오고 있는 것은 은은한 달빛이다. 계절을 잊을 정도로 공기가 차갑게 긴장되어 있는 이유는 신사를 둘러싼 결계 때문일 것이다. (배전 : 역주신사에서 참배를 올리기 위해 지은 건물.)
시끄럽게 울던 벌레의 소리도, 지금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소녀는 넓은 배전의 한가운데에 말없이 앉아 있었다.
아직 앳된 구석은 남아 있지만, 예쁜 얼굴의 소녀다.
호리호리하고 날씬한 몸이지만, 가냘프다는 인상은 없다. 오히려 잘 벼려진 칼날 같은 탄력적인 강인함이 느껴지는 소녀였다. 그렇게 생각되는 이유는 무척 진지한 인상의 꾹 다문 입술과 그녀의 눈에 깃든 강한 빛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소녀가 입은 옷은 칸사이에 있는 사립 중학교의 교복.
신토계열의 명문 학교인데, 그곳이 사자왕 기관의 하부 조직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배전에는 먼저 온 손님이 세 명 있었다.
발에 가려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들의 정체는 소녀도 미리 들어서 알고 있었다.
'삼성(三聖)'이라고 하는 사자왕 기관의 장로들이다.
하나같이 최고위 영능력자, 또는 마술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위의 기운은 조용하기 그지없고, 위압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점이 오히려 두렵다.
소녀는 교복의 옷소매를 무의식중에 세게 움켜쥐었다. 그리고.....
"이름은?"
발 너머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말소리는 엄격하지만 차가움은 느껴지지 않는다. 상상했던 것보다 젊은 음성이었다. 어딘지 웃음기를 머금은 여자 목소리다.
"히메라기입니다. 히메라기 유키나."
약간 늦게 소녀는 대답했다. 긴장으로 목소리가 아련히 떨렸다. 그렇지만 발 너머의 여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질문을 이었다.
"나이는?"
"앞으로 사 개월이 지나면 열다섯이 됩니다."
"그렇군요..... 히메라기 유키나. 수행을 시작한 건 칠 년 전 이로군요. 당신이 일곱 살 생일을 맞이하고 곧바로..... , 눈이 오던 추운 밤에 홀로 기관에 보내졌죠. 그날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발 너머의 여자가 갑자기 혼잣말 같은 말투로 물었다. 유키나의 등줄기가 차갑게 식었다. 미리 조사해 둔 것은 아니리라. 유키나의 기억을 읽은 것이다. 미리 전개해 두었던 유키나의 정신 방벽을 간단히 통과한 압도적인 초감각 지작이다.
"아뇨..... , 애매한 기억밖에 없습니다."
유키나는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말은 사실이 아니었고, 상대도 그것을 알아차렸을 터이다. 그러나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질문을 이었다.
"성적이 좋은 모양이군요. 엔도가 칭찬했어요."
"감사합니다."
"엔도와는 몇 번 같이 일한 적이 있죠. 대단히 우수한 공마사(攻魔師)였습니다. 당신의 정신 방벽 술식에는 그녀와 비슷한 버릇이 있군요. 엔도에게는 그 밖에 무엇을 배웠죠?"
"전반적인 주술(呪術)과 무술(巫術), 그리고 환술(幻術)과 액막이를."
"마술은? 엔도의 전문은 그쪽일 텐데요."
"대륙 계통은 약간. 서양 마술은 기초 이론뿐입니다."
"마족과의 전투 경험은?"
"모의 전투라면 양성소에서 집중 훈련을 두 번. 실전은 없습니다."
"무술은?"
"조금 할 줄 압니다."
"그런가요? 그렇담 좋겠는데."
쿡쿡, 하고 발 너머에서 여자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웃!?"
그 순간, 폭발적으로 부풀어 오른 살기를 감지한 유키나는 몸을 솟구쳤다.
마룻바닥을 박차고 그대로 후방으로 한 바퀴 회전해서 착지했다. 머리로 생각하고 한 행동이 아니다. 위험을 감지한 육체가 무의식중에 움직인 것이다.
공기를 가르고 내리쳐진 칼날이 유키나가 앉아 있던 바닥을 산산히 부수었다.
유키나의 동작이 한순간이라도 늦었다면 틀림없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진검을 사용한 인정사정없는 공격이다.
우람한 갑옷 무사 두 명이 어둠 속에 녹아들듯이 나타났다.
울툭불툭한 대도를 든 얼굴이 없는 무사. 그리고 좌우로 활을 든, 팔이 네 개인 무사.
그들의 존재는 실체가 아니다. 주술로 생성된 *시키가미다. (시키가미 : 음양사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영적인 존재.)
아마 발 너머에 있는 세 명 중에 누군가의 소행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전에, 유키나는 이미 반격에 나서고 있었다.
"일렁임이여!"
입속으로 짤막한 주문을 외고, 손바닥에 주력(呪力)을 집중시켰다. 그것을 시키가미의 갑옷을 투과해서 내부를 직접 강타했다.
갑옷 무사의 형상이 순식간에 산산이 흩어졌다. 그 자리에는 들고 있던 대도만 남았다.
시키가미를 생성하는 촉매로 쓰인 그 대도를, 유키나는 공중에서 낚아챘다. 두 명째 갑옷 무사의 공격을, 빼앗은 대도로 막아서 흘려 넘겼다. 그리고 화살을 쏜 직후인 상대를, 대도룰 수평으로 휘둘러 양단했다. 두 명째 갑옷 무사도 소멸했다.
"이게..... , 무슨 짓이죠?"
가볍게 숨을 몰아쉬면서 유키나는 대도를 발 쪽으로 겨누었다.
더 이상 시키가미를 상대할 생각은 없었다. 전투를 오래 끌면 기량이 뒤쳐지는 유키나에게 승산은 없다. 설령 상대가 사자왕 기관의 장로라 할지라도 그들이 장난을 계속할 생각이라면 술사를 직접 공격해야 한다. 그렇게 판단했다.
마치 그것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발 너머에서 띄엄띄엄 박수 소리가 났다.
"으하하하하. 그렇게 나와야지, 히메라기 유키나. 잘 견뎠다."
만족스럽게 웃는 남자의 낮고 무거운 목소리다.
이어서, 나이도 성별도 알기 어려운 또 하나의 목소리가,
"저주 쪽에는 서투르나 영시(靈視)와 검술에는 발군의 재능을 가진 인재..... , 보고서대로 전형적인 검무(劍巫)로구나. 일단은 합격이라고 해 둘까."
"합격......?"
발 너머에서 들려온 장로의 목소리에, 유키나는 발끈하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래요. 당신이 검무의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원래는 앞으로 4개월은 더 수행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사정이 바뀌었습니다...... 앉도록 하세요, 히메라기 유키나."
처음의 여자 목소리가 말했다. 그녀의 말에 따라 마지못해, 유키나는 다시 무릎을 꿇고 앉았다. 한숨을 지으며 대도를 내려놓았다.
"자, 본론으로 들어가죠."
"네."
"좋은 대답입니다. 우선 이것을."
그 말과 함께 발 사이로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나비 한 마리였다.
소리도 없이 날갯짓하던 나비는 유키나의 앞에 착지하더니 한 장의 사진으로 변했다.
찍힌 것은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남학생 한 명. 친구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은 누군가가 숨어서 찍은 모양이다. 무방비하고 빈틈투성이인 표정이다.
"이 사진은 뭔가요?"
"아카츠키 코죠가 그의 이름입니다. 알고 있나요?"
"아뇨."
유키나는 솔직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제로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그 대답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여자는 이렇다 할 감정이 없는 어조로 다시 질문했다.
"그가 어떻게 보이지요?"
"엣?"
갑작스러운 질문에 유키나는 당황했다.
"사진만으로는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아마 무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거나 초보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걸로 보입니다. 특별히 위험한 주물(呪物)을 소지한 기색도 없고, 촬영자를 알아차린 낌새도 없습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당신한테 그가 어떻게 보이는지를 묻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서, 그는 당신의 취향인가요?"
"네, 네에? 무슨.....?"
"예를 들어 얼굴이 잘생겼다든가, 인상이 좋다든가 하는 거죠. 어떻습니까?"
"저기..... , 절 놀리시는 건가요?"
못마땅한 말투로 유키나는 반문했다. 장로들의 진의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엉뚱한 질문에는 악의가 느껴졌다. 바닥에 내려놓은 대도에 저절로 손이 가려고 했다.
유키나의 그런 반응에, 발 너머의 여자는 낙담한 기색으로 한숨을 짓고,
"그럼 제4진조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히메라기 유키나."
더욱 갑작스러운 그녀의 질문에, 유키나는 작게 숨을 삼켰다. 상식을 갖춘 공마사라면 누구든 그 이름만 들어도 한동안 침묵하게 될 것이다.
"염광(焰光)의 야백(夜伯)(컬라이더 블러드) 말입니까? 열두 권수를 거느린 네 번째 진조라고....."
"그렇습니다. 단 한 명의 혈족 동포도 두지 않는 유일하고도 고고한 최강의 흡혈귀입니다."
여자의 냉정한 말소리가 배전에 울렸다.
제4진조, '염광의 야백'.....
마족에 관련된 자라면 그 이름을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세계 최강의 흡혈귀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그렇게 자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간에서는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적대하는 자들도 굳이 그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제4진조란 그러한 존재다.
"그렇지만 제4진조는 실재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단순한 도시 전설의 부류라고."
유키나의 말에, 여자가 고개를 가로젓는 기척이 느껴졌다.
진조란 어둠의 혈족을 지배하는 제왕.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대한 마력을 갖춘 '시작의 흡혈귀'다. 그들은 스스로의 동족인 수천수만의 군세를 거느리고, 3개 대륙에 각자의 자치령인 밤의 제국(도미니온)을 구축하고 있다.
"하기는 공공연히 존재가 확인된 진조는 세 명뿐입니다. 유럽을 지배하는 '망각의 전왕(戰王)(로스트 워로드)', 서아시아의 맹주인 '멸망의 눈동자(포게이저)', 그리고 남북 아메리카를 지배하는 '혼돈의 황녀(케이오스 브라이드)'..... 그에 반해 제4진조는 자신의 혈족에 두지 않으며 따라서 영지도 없습니다."
"그러하다. 허나 그것만으로는 제4진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되지 않지."
여자의 말에 뒤이어 남자가 거친 어조로 말했다. 이어서 또 한 명의 장로의 목소리가.
"그대는 금년 봄에 교토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를 기억하고 있는가?"
".....엣?"
"4년 전의 로마 열차 사고, 그리고 중국의 도시 소실 사건. 맨해튼의 해저 터널 폭파 사고도 있었지. 과거의 일로는 시드니의 대화재도."
"설마..... , 그게 전부 제4진조의 소행이라는 겁니까?"
유키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장로가 태연하게 입에 담은 것은 모두 수많은 사상자를 낸 흉악한 대규모 테러 사건이다. 하나같이 범인은 불명이라고 보도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것들이 진조 관련의 사건이라면 피해가 그 정도로 그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할 수 잇다.
"모든 상황증거가 네 번쨰 진조의 실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창백해진 유키나에게 처음의 여자 목소리가 말했다.
"그들은 역사의 전환점에 반드시 나타나 세상에 학살과 대파괴를 안깁니다. 그렇지만 문제는 그것분이 아닙니다. 제4진조의 존재는 이 세상의 질서와 안정을 무너뜨립니다. 그 이유는 알겠지요?"
"네."
유키나는 어색하게 끄덕였다.
흡혈이라는 종족 특성, 그리고 높은 교양과 지성을 두루 갖춘 그들 흡혈귀는 항상 인류를 적대시하는 존재만은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은 인간 사회에 섞여 살기를 선호하며, 인류라는 종족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행위는 이제까지 신중하게 자제해 왔다.
더욱이 각국의 정부와 진조 사이에는 무차별적인 흡혈 행위를 금지하는 조약이 맺어져서 표면적으로는 평화적인 공존이 실현되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러나 이는 세 개의 밤의 제국(도미니언)의 역학 관계가 대단히 미묘한 균형 위에 성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진조들이 성역 조약 체결에 동의한 이유는 최근 수십 년 사이에 진조들이 서로를 견제해서 누구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항상 자신 이외의 진조의 존재를 두려워해서 인류를 적으로 돌릴 여유가 없었떤 겁니다."
"네."
"하지만 만약에 그들과 동등한 힘을 가진 네 번째 진조가 출현한다면 그 균형은 간단히 무너지겠죠. 최악의 경우, 인류가 회말린 대규모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제4진조가 있는 곳은 알려져 있습니까?"
유키나가 긴장한 읍색으로 질문했다. 어쩐지 대단히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요. 아직 확인된 사항은 아니지만, 거의 틀림없을 겁니다."
"그는, 어디에?"
"도쿄 도 이토가미 시-----인공섬(기가 플로트) '마족 특구'입니다."
여자의 말에 유키나는 한동안 할 말을 잃었다.
"제4진조가, 일본에.....!?"
"그것이 오늘 당신을 이곳에 부른 이유입니다, 히메라기 유키나. 사자왕 기관 '삼성'의 이름으로 당신을 제4진조의 감시 담당으로 임명합니다."
조용하지만,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어조로 여자가 말했다.
"제가..... , 제5진조의 감시 담당으로,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당신이 감시 대상이 위험한 존재라고 판단될 경우에는 전력을 다해 그를 말살하세요."
"말살.....!?"
유키나는 놀라서 말을 잃었다.
제4진조에 대한 두려움은 있다. 그만한 대임을 자신이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도 있다.
이제까지 수행을 게을리하지 않았지만, 어차피 유키나는 수습에 불과했다. 정말로 제4진조를 쓰러뜨릴 수 있으리라고 자만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진조는 일국의 군대에 필적할 만한 전투력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진정한 괴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하지 않으면 언젠가 수많은 사람이 재앙에 휩싸일 것이다.
"이걸 받으세요, 히메라기 유키나."
감아올려진 발 사이로 여자가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화톳불에 비추어져 어둠 속에 떠오른 그것은 한 자루의 은색 창, 유키나는 그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건....."
"7식 충격항마창 '슈네발츠아'입니다. 이름은 '셋카로'."
당신도 알겠죠, 하는 여자의 물음에 유키나는 힘없이 끄덕였다.
7식 충격항마기창(슈네발츠아)은 특수 능력을 지닌 마족에 대항하기 위하여 사자왕 기관에서 개발한 무기다. 고도의 금속 정련 기술로 제작된 그 창날은 최신예 전투기와 유사한 미려한 실루엣을 지니고 있어서, 바야흐로 기창이라는 명칭에 어울린다.
그렇지만 무기의 핵으로 고대의 위한 창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양산은 불가능하고, 세상에 단 세 자루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무튼 개인 수준으로 다루는 병기 중에서는 틀림없이 최강이라고 단정할 만한, 사자왕 기관의 비밀 병기다.
"이걸..... , 제게?"
내밀어진 창을 받아 들면서 유키나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지만 여자는 오히려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조가 상대라면 좀 더 강력한 장비를 주어서 보내고 싶은 심정이지만, 하지만 현재 상태로는 이것이 우리가 마련할 수 있는 최강이 무신구(武神具)입니다. 받아주시겠죠?"
"네, 그야 물론.....이지만."
그렇게 말하고, 유키나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발 사이로 내밀어진 물건은 창뿐이 아니었다. 비닐로 포장된 신품 교복이 한 벌, 예쁘게 개켜서 건네졌다. 하얀색과 파란색을 기초로 한, 세일러복 옷깃의 블라우스와 플리츠스커트. 아무래도 중학교의 여자 하복인 듯하다.
"저어, 이건?"
"교복입니다. 당신의 키에 맞추어서 준배했습니다."
"저어..... , 그러니까 왜 교복을?"
"당신의 감시 대상이 그 교복을 입는 학교의 학생이기 때문입니다."
"엣?"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유키나는 가벼운 혼란에 빠졌다.
"엣? 감시 대상..... , 제4진조가, 학생? 에엣?"
"사립 사이카이 학원 고등부 1학년 B반, 출석번호 1번. 그것이 제4진조 아카츠키 코죠의 현재 신분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사자왕 기관에는 그와 온건하게 접촉할 만한 인재가 없습니다. 오직 한 사람, 히메라기 유키나, 당신을 제외하고는."
"아카츠키 코죠..... , 이 사진의 인물이 제4진조.....? 에엣!?"
바닥에 놓인 사진을 내려다보고, 유키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발 너머에서 '삼성'이 쓴웃음을 짓는 기척이 새어 나왔다. 그제야 겨우 유키나는 이해했다. 어째서 이런 중대한 임무에 자신 같은 미숙한 검무가 선발되었는지.
"다시 한 번 명합니다, 히메라기 유키나. 당신은 이제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에게 접근해서 그의 행동을 감시하도록 하세요. 사이카이 학원의 전학 절차는 이미 마쳐 두었습니다.... 이상입니다."
일방적으로 그 말만 남기고, 발 너머에서 장로들의 기척이 사라졌다.
배전에 홀로 남겨진 유키나는 숨을 쉬는 것조차 잊고, 그저 멍하지 손에 든 창을 응시하고 있었다.
제4진조. 전학. 접촉. 감시. 말살. 어쩌면 자신은 터무니없는 재앙에 휘말리게 된 것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한 유키나는 자기도 모르게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게 되었다.
점술 쪽에 서투른 그녀가, 이윽고 그 직감이 들어맞았음을 깨닫게 된 것은 얼마 후의 이야기다....
조금씩 연재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