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방어가 인간의 본능이듯이 공격성도 그럴 것이다. 실제로 공격과 방어는 또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든 행동이든 어떤 폭력의 일부일 것이다.
‘무도(武道)’나 ‘무예(武藝)’라는 단어가 보여주듯이, 육체와 정신을 단련해 수준 높은 공격과 방어를 전개하는 행위는 단순한 완력과 기술을 넘어 도예(道藝)의 경지로 승화되었다. ‘최배달’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익숙한 최영의(崔永宜, 1923∼1994)는 그런 무도를 세계를 보여주고 보급한 대표적 인물이다.
출생과 도일
최영의는 어려서부터 무도에 관심을 가졌다. 1932년 아버지가 세운 김제의 용지소학교에 입학한 그는 택견·씨름 같은 고유 무술을 알게 되었다. 5년 뒤인 1937년에는 서울로 올라와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거기서도 계속 무술을 연마했다.
그의 일생에서 큰 전기는 1939년이었다. 그 해 3월, 16세의 소년 최영의는 홀로 군산에서 나가사키로 도일했다. 그 뒤 그의 삶의 주된 무대를 선택한 중대한 결단이었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불편한 교통·통신 때문에 무척 멀고 외로웠을 여정을 어린 나이에 홀로 떠났다는 사실은 그의 견고한 마음을 보여준다. 최영의는 야마나시(山梨) 소년항공학교에 들어갔고, 거기서 앞으로 자신의 삶을 지배할 가라테(空手道)를 처음으로 배웠다.
수련과 도약
그의 무도 인생에서 중요한 전기는 23세 때인 1946년이었다. 그 해 9월 최영의는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 1584~1645)의 [오륜서(五輪書)]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쌍검을 사용하는 니토류(二刀流)를 창시해 60여 번의 결투에서 모두 승리한 에도 시대 초기의 전설적 무사였고, [오륜서]는 그가 무도의 비법을 기록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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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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