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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도끼만행
2013.05.13 18:31 조회 :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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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선이 그어진 후 휴전회담이 열렸던 판문점은 유엔군과 공산 측의 공동경비구역이 됩니다. 본래는 공동경비구역 안에서의 관계자들의 왕래는 자유로웠지만, 지금은 군사분계선이 구분되어 이걸 넘어갈 수도 없고, 상대측 병사에게 말도 걸 수 없는 데요, 이 분계선이 생긴 계기는 바로 1976년 8월 18일에 발생한 판문점도끼만행사건입니다.

 

당시 판문점에는 미루나무가 있었는데, 남쪽 초소에서 북쪽을 보면 이 나무에 가려 북쪽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남측에서는 8월 6일 나무를 베려고 하였으나 북한의 반대로 작업이 무산됐습니다. 나무의 위치는 군사분계선 남쪽이긴 했으나 거의 경계선에 위치해 작업을 하기에는 애매한 자리였습니다.

 

 

 

 

유엔군 측은 8월 18일, 가지라도 치기 위해 작업을 진행했으나 북한군이 다시 나타나 작업 중단을 요구합니다. 유엔군 측은 가지치기일 뿐이라며 작업을 진행하려 하자, 북한은 병력을 더 모으고는 작업을 감독하던 경비대장 아서 보니피스 대위를 때려눕히고, 인부들이 작업을 하던 도끼를 들어 보니피스 대위와 소대장 마크 배럿 중위를 처참하게 살해합니다.

 

이 사건으로 판문점은 휴전 이후 최초로 군사적 긴장 상태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주한미군은 8월 19일 휴전 이후 최초로 데프콘3를 발령합니다. 군의 전투준비태세를 뜻하는 데프콘은 총 5단계로 나뉘는데, 분단국가이자 휴전상태인 우리나라는 상시적으로 데프콘4를 유지하는데 3으로 단계가 오른 것이지요. 데프콘3는 적의 남침이 우려되는 상황으로 국군 장병의 휴가가 통제되는 등 전쟁 직전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당시 상황은 긴박했습니다.

 

미국은 ‘폴 버니언 작전(Operation Paul Bunyan)’을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이는 북미의 벌목꾼들 사이에 전해지는 전설에 등장하는 거인 나무꾼의 이름을 딴 것으로 대대적인 군사지원 하에서 문제의 미루나무를 베는 작전이었습니다. 당시 미군은 핵무기 탑재도 가능한 폭격기 F-111 20대를 대구에 배치하는 것을 비롯하여 항모전단을 서해에 배치하고 병력 증파도 준비하는 등의 대대적인 군사력을 동원합니다. 국군도 특전사 대원 64명으로 결사대를 조직하여 투입하여 미루나무 제거에 들어갑니다.

 

만일 미루나무를 자르는데 북한이 다시 도발을 할 경우에는 바로 반격에 돌입하여 포병대가 개성의 북한군 막사에 포격을 하고, 북한 측 포병대도 공격을 하며, 북한 전차부대의 남하를 대비한 계획까지 수립하였습니다. 그리고 폴 버니언 작전의 실행을 앞두고는 데프콘3를 데프콘2로 격상하여 완전한 준전시상태로 돌입합니다.

 

 

 

마침내 AH-1 공격헬기 7대와 다목적 헬기 20대의 직접 엄호 하에 특전사 병력까지 투입하여 미루나무 제거에 돌입하고, 국군 특전사는 더 나아가 북한군 초소 4개까지 파괴합니다. 이때도 역시 북한의 도발 시 응사를 한다는 계획이 세워져 있었지만, 북한은 미루나무는 물론 초소 파괴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 하였습니다.

 

당시는 냉전이 치열하던 시대였지만, 북한의 동맹국인 소련과 중국도 판문점 도끼 만행사건에 대해선 북한을 도울 명분이 없었죠. 게다가 전쟁까지 불사한 미국의 강경대응에 소련과 중국의 침묵을 보는 북한은 초소가 파괴되는 것도 지켜봐야 했고, 끝내 김일성의 유감 성명으로 사건은 마무리됩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후 1년 간 준전시상황을 유지하였고, 남북한 대치도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은 북한의 참혹한 도발인 동시에 현재의 휴전은 언제든 깨지고 한반도가 다시 전쟁 상태로 갈 수 있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휴전 이후 데프콘2가 발령된 적은 현재까지는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지만, 1999년 제1연평해전 때도 데프콘3에 준하는 전투준비태세 강화에 들어간 적이 있었으며, 제2연평해전이나 연평도 포격사태 등 군사적 위기 사항은 지속되고 있습니다.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같은 비극을 잊지 않는 것이 평화를 지키는 길입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담당하는 미군 부대는 원래 ‘캠프 키티호크’였으나 사건 이후 ‘캠프 보니파스’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도 과거의 비극을 잊지 말고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을 기억하면서 평화를 지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네이버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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