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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정발(鄭撥)은 부산진성의 첨사(첨절제사)였습니다.

 

 

임진년 4월 12일 진시경 일본 함대가 대마도를 떠나 신시에 부산진 앞바다에 다다릅니다. 병선은 약 7백척이요 병사는 9군 약 15만 8천여명이였다고 합니다. 이때 첨사 정발은 절영도(絶影島)로 사냥을 나가 자고 다음날 아침 부산에 일본군이 상륙했다는 보고를 듣게 됩니다. 하지만 그떄까지만 해도 정발은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일본군이 장사를 목적으로 온 것인지도 모르고, 또 공격을 한다 쳐도 부산진성에는 6천여명의 군사가 있었고 경상 좌,우수영 군사 3만명, 동래,다대포,양산,울산,경상좌병영,밀양 등지에서 충분히 왜군을 막을수 있고 또 서울에서 지원군이 오면 왜군을 격파할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 백성들은 동인이자 일본에 부사(정사 다음의 외교관)으로 팍견된 김성일의 말을 믿은 조정이 일본의 침략을 입밖에 내기를 금지해서 전혀 난리가 난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정발은 칼 쓰기를 자랑하고 호협한 남아였다고 합니다. 부산진성 주변엔 철질려(적의 기병이 오지 못하게 마름쇠를 깔아논 것)이 있고 또 6천 병사가 있었으며, 깊은 못이 있었고 마지막으로 정발 자신이 있었기에 자신은 아무 걱정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명을 내려 2천 군사로 하여금 성곽과 성벽을 지기게 하고 자신 또한 갑주를 입고 칼을 뺴들고 전투 준비를 합니다. 그때일본의 선봉장이자 소서행장(小西行長)이나 평행장(平行長)으로 잘 알려져 있는 고시 유키나카 가 정발에게 사자를 보냅니다. 그 내용인즉, 평수길(풍신수길, 도요토미 히데요시)이 명나라로 대군을 발하여 치려 하니 길을 비켜달라는 것입니다. 정발은 코웃음 치며, 사자를 성밖으로 좇아내었습니다. 그당시 조선에게 명나라는 상국이고, 명장은 천장(天將) 명병은 (天兵)이라 부를 정도였으니 그같은 정발의 행동은 당연한 것이였죠.

소서행장은 이같은 정발의 답변을 듣고 군사를 물리고, 정발은 싸움에서 크게 이긴것처람 제장들과 술을 질탕히 먹고 잠에 빠지게 됩니다. 부산 성내에선 군사나 백성이나 모두 안심하게 되지요. 하지만 소서행장이 물러난 것은 당장 공격하면 이기기 어렵고 또 많은 희생을 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부산진성의 망루병마저 잠들어 버리게 됩니다. 일본군은 축시 말에서 인시 초 사이에 공격을 개시합니다. 선봉장인 모리휘원(毛利輝元 모리 데루모토 일본 7군 사령관)이 수만 군사를 이끌고 여러겹으로 부산진성을 에워쌉니다. 그는 근처 지리를 잘 아는 왜호를 앞잡이로 철질려가 있는곳을 피해 사다리를 놓고 성안으로 진입합니다. 이때부터 살육전이 시작됩니다. 백성들은 순식간에 왜군에 총에 맞아 죽거나 밟혀 죽습니다. 정발은 급히 군사들을 불러 응전하였으나, 우리 군사들의 활이 조총을 이길 수가 없을뿐더러, 일본군사는 성안에서 싸우는 시가전에 익수하고 조선군사는 야전에서만 익어서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멀리서 싸우면 활이 유리했으나(그당시 조총은 멀리 나가지는 않았나 봅니다.)단병전(칼싸움)에선 심각히 불리했습니다. 일본도가 3~4척에 달했는데 그에 비하면 우리군사의 칼은 단도에 불과했죠. 이건 명나라 지원군이 벽제관에서 싸울때 왜군한테 대패한 간접적인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명군의 칼은 우리 칼보다 더 짧았다는 이야기가 있었답니다.) 조선군사들이 칼을 피하려고 고개를 숙이면 날카롭고 긴 일본도가 단번에 우리 군사들의 목을 잘라버리는 것입니다. 길을 잘 아는 왜호들을 앞세운 왜병들은 첨사 아문을 포위하고 항복을 권유하자 비장 황운(黃雲)이 격노하여 칼을 빼들고 달려가는 정발의 옷소매를 잡으며 통곡합니다.

 

"사또 어쩔수없으니 항복합시다."

 

하지만 정발은 항복을 논하는 자는 엄벌에 처하겠다는 명령과 함께 남은 1천명의 군사(5천명은 이미다 죽었습니다)를 이끌고 싸웁니다. 비록 늦었지만 정발은 잘 싸웠습니다. 정발의 검은 갑옷이 번뜩일 때마다 왜군 수십명이 죽었답니다. 해가 밝아오자 남은 조선군도 하나둘씩 쓰러져 조선군은 전멸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전통에 있는 화살마자 다하자 황운이 다시 말하기를 "사또 도망했다가 다시 기회를 얻는게 어떻겠소." 하지만 정발은 자신은 부산진성의 귀신이 될것이란 말과 함께 다시 응전하고, 이에 힘얻은 군사들도 칼이나 활통,활을 들고(이미 화살은 다한 뒤였습니다.) 달려나가 한바탕 싸웁니다. 정발이 달려나가며 수십명을 쳐죽이고 그 뒤를 조선군이 따르며 그들은 첨사 아문에서 고루(북단다락)까지 나갔습니다. 소서,모리군은 도망치기에 바빴죠. 군사들과 정발은 장터거리까지 나왔으나 적병이 쏜 조총 10여발을 몸에 맞은 정발이 거꾸러지고, 그를 부축하려던 황운마저 탄환을 맞아 주장을(정발) 안은채로 쓰러져 죽고 맙니다. 진시 말 경 부산진성의 6천병사는 거의 다 싸우다 죽고 부산진은 점령됩니다. 이 싸움에서 일본군도 4천여명이나 죽었다고 합니다.

 

 

 

 

 

걍 정발 꺼꾸로 하면

발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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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
  • 우리 학교 근처에 정발초, 정발중, 정발고 다 있는데 Lv. 1Xx위대한좀비xX 2013.0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