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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가난하다.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아빠와 엄마는 이혼하셨다.

 

나는 엄마와 단둘이 산다.

우리는 단칸방에서 세들어 산다.

나는 그게 싫다.

 

엄마는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신다.

일당 2만원. 한달에 60만원.

그게 뭔 큰돈이라고.. 우리 엄마는 그 60만원을 아주 아꼈다. 나는 왜 아끼는 건지 몰랐다. 그때는 말이다..

 

학교에서 어딜 간댄다. 진짜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입장은 난처했다.

차비 밥값 간식값 숙소값.. 모두 다 합치니 80만원이 훌쩍 넘었다.

나는 꼭 가고 싶었기에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나 학교에서 어디가는데 가면 안되?"

"얼만데?"

"80만원 넘어"

그순간 엄마의 표정이 굳는걸 봤다.

엄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는 화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80만원이 뭐 대수야?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되? 난 이 가난이 지긋지긋하게 싫다고. 가난이 내가 가는길을 따라다녀. 그 가난이 날 괴롭힌다고!! 이제 좀 자유롭게 살면 안되?

이렇게 좁은 단칸방에서 사는거 이제 지긋지긋하다고. 가난 가난! 정말 싫다고!!!"

나는 결국 폭팔했다.

 

그러자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이셨다. 그러시더니 서랍을 여시고는 100만원을 쥐어줬다.

 

"그래 이정도면 됬어?"

 

서랍 속에는 돈이 많이 있는거 같았다.

 

"아니 좀 더있어야되."
그러자 엄마는 50만원을 더 꺼내주셨다.

 

"아 좀 더주면 안되?"

이렇게 묻자

 

엄마가 결국엔 서랍에 있는 돈 전부를 꺼내서 주셨다.

 

총 합하니 180만원. 난 만족했다.

 

그러고는 유유히 집을 나왔다.

그래서 100만원은 학교에 내고 80만원으로 애들이랑 쇼핑을 하러갔다.

이렇게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옷 신발 먹을거리 소품 등을 사고 집에 들어와서 짐을 챙겼다.

이불을 펴고 누웠다. 설래었다. 역사속의 유적을 보러 다니는거니까...

5박 6일로 수학여행보다 길었다. 그동안 자유를 만끽할수 있다니 너무 설레었다.

 

다음날..

 

가는날이다. 나는 엄마한테 인사도 안하고 휙 나갔다.

버스를 타고 가다 불국사, 부석사.. 등등 문화유적, 절 등을 다녔다.

 

그렇게 신나는 5박 6일은 끝났다.

집에 들어갈려고 손잡이를 잡고 문을여니까 이상한 기운이 감돌았다.

방에 들어가서 짐을 풀고 방에 들어갔다. 엄마는 안계셨다.

 

'어.. 지금은 엄마가 계실 시간인데..'

 

그렇게 집을 뒤졌다. 서랍 안에서 편지같은게 발견됬다.

내용은 이랬다.

 

 

 

미안하구나 너를 두고 떠나서.. 너를 한번이라도 더 보고싶다. 하루남았는데 하루만 더 버티면볼수있는데, 못보고 죽을거 같구나..미안하ㄱ...


 

쓰다가 정신을 잃으신거 같았다.

그러다가 집주인이 들어오셨다.

 

"왔구나."

 

"저희 엄마 어... 어디계세요??"

 

".....따라오렴"

 

불길한 기운이 집 전체를 매웠다.

 

병원으로 갔다. 엄마는 중환자실에 계셨다.

 

"어..엄마.."

 

뭐지 이 기운은.. 처음느껴보는거같았다.

 

그때..

 

'삐--------------------------------------'

 

아.. 안되..

 

엄마때문에 눈물이 난적은 처음이었다.

 

왜 돌아가셨는지 의사선생님한테 물어보았더니.

 

"폐암 말기입니다. 또, 환자분은 암이 다른데로 전이되셨어요."

 

충격적이었다.

 

그때 한가지.

 

엄마는 받으신 돈을 모두 통장에 넣어두신다.

근데 왜. 나한테 주신 돈은 서랍에서 나왔을까.

 

그랬다. 서랍에 있었던 것은 수술비용이었다.

 

암이 처음 발견됬을때는 6달전. 폐암 초기였다. 없앨수 있는 단계였지만 돈이 문제가 되었다.

엄마는 그때부터 열심히 만원씩 서랍에 넣어두셨다.

하지만 돈을 벌어 치료를 하려했을때는 폐암 말기.

그렇게 되어 엄마는 더욱더 열심히 일을 하셨고 가끔은 PC방까지 가시는거 같았다.

엄마는 그러다 보니 8시에 오셨다. 식당에서 일하시고 재택알바까지. PC방이 문제가 된것이었다.

폐암은 더욱 심해졌고 그 암세포는 다른 곳까지 전염(?)시켰다.

 

그렇게 모은 돈을 내가 다 빼갔으니 치료할수 없는건 당연한일..

나는 슬펐다 한편으로는 죄책감까지 들었다.

 

"엄마....흑흑.. 미안해...미안해... 엄마 없으면 나 어떻게 살라고.. 엄마... 가지마.. 미안해 가지마.. 흐윽..."

 

 

 

 

한가지 더 올려드릴께요. 이것도 가난이네요 처음은 같은데 뒤에가서 쬐에 끔 틀려지네염

이건 좀 짧게 해드릴께요 중간 좀 빼먹고

 

 

 

 

나는 왕따다. 아니 그냥 왕따가 아닌 전따.

이유는 가난이었다.

 

가난때문에 옷도 잘 못사입고, 꼬질꼬질하고.

난 이런생활이 싫었다 정말..

 

어느날은 이것때문에 폭팔했다.

 

"엄마! 딴애들은 다 좋은옷 입고 깨끗하고 단정한데 나는 이게 뭐야!"

 

그렇게 나는 그날 방문을 쾅 닫고 엄마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학교에 갔다. 한명도 내주위에 오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괴롭혔다.

 

그날도 역시 엄마와 한마디 대화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핸드폰을 꺼놓고 학교에 갔다 왔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나면 우리엄마는 매일 우리**이 왔어? 하신다.

하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왜그러지..

핸드폰을 켜고 핸드폰 DMB를 봤다.

 

뉴스를 봤다 보니까 이런기사가 나왔다.

 

지하철 4호선 열차에 불이났다는 것이다.

길음역에서 말이다.

그 안에 있었던 승객들은 모두 사망했다고 했다.

그때 친구한테서 문자가 와서 봤다.

확인을 했는데도 문자가 왔다니 뭐라니 해서 문자를 확인하려고 수신함에 들어갔다.

그러니 이런 문자가 와있었다.

엄마 오늘 명동왔다. 예쁜 옷이랑 신발사가지고 갈께.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명동이라면.. 4호선..

또하나

 

예쁜거 샀다^^ 엄마 지금 갈께

아.. 3시 57분에 온건데 지금은 7시. 불안했다.

 

문자가 하나 더있었다

 

우리 딸한테 가야되는데... 미안해..

4시 17분

 

사고시간과 같았다.

 

"아.. 엄마 엄마! 안되!!"

 

의자에서 박차고 일어나 지하철역으로 가서 4호선 길음역으로 갔다. 사고 수습이 한창이었다. 시신은 모두 병원에 옮겼다고 해서 그 병원으로 갔는데..

시신은 공개를 하지 않는데.. 망할..

우리엄마 마지막 모습이라도 보고싶었는데..

 

그때 누가 오더니 봉지를 전해주었다.

그래서 봤더니 옷이랑 신발 그리고 만원이 들어있었다.

그리고서 이렇게 말했다

"CCTV를 보니까 어떤 분이 불이 퍼지니까 봉지를 껴안으시더라구요. 목숨바쳐 지킨 선물이예요"

 

나는 눈이 찡해졌다..

목이 메었다.

 

"흐윽.. 목숨이 더 중요하지 이게 더 중요해..? 이거 버리고 불 피했으면 살았을꺼 아니야..흐으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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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3
  • ㅈㅈㅂ Lv. 1KYCygni 2012.07.09
  • 소설배껴오지마쇼 Lv. 1ColorllWhite 2012.07.09
  • 소설인가? 길어서 안읽음 Lv. 1DieselengineXP 2012.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