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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47이 미국총이라는 믿힌년...
2011.04.12 20:26 조회 : 73
AK-47 [-四十七, Automat Kalashnikov-47]
요약
1947년에 구소련의 주력 돌격소총으로 제식 채용된 자동소총이다. 단순함과 높은 신뢰성 등으로 20세기에 가장 많이 생산된 돌격소총이다.
분류 자동소총
제작국가 러시아
제작연도 1947년
사용국가 러시아, 중국, 베트남, 이라크, 북한 외
제원 구경 7.62㎜, 길이 86.9㎝, 무게 4.3㎏, 최대사거리 1,500m, 유효사거리 300m
본문
구소련의 자동소총으로서 독일의 G3, 미국의 M16소총과 함께 세계의 3대 돌격소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47년 이후 개량형과 변형이 많이 개발되어 바르샤바조약기구제3세계 개발도상국 등의 국가에서 사용되었다. AK-47은 1947년 제식 채용된 칼라시니코프 자동소총(Avtomat Kalashnikova)이라는 뜻이다. 북한에서는 아카보총()이라고 부른다.

설계자는 구소련군 하사관이었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Mikhail T Kalashnikov)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독일군에 비해 열세였던 보병용 개인화기의 개량 필요성을 느껴 1943년부터 MP44/StG44를 기초로 7.62㎜탄을 사용하는 AK-47을 설계하였다. AK-47은 1947년 구소련군의 주력 돌격소총으로 제식 채용되면서 양산을 시작하였다.

7.62×39㎜탄을 사용하여 연발 사격할 때 반동이 크지만 구조가 단순하여 분해·조립이 간단하고 사용하기 쉽다. 러시아 기후를 고려하여 온도가 낮은 지역에서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개머리판과 권총손잡이, 총열덮개 등을 나무로 제작하였다. 그러나 사막이나 아프리카 등 먼지가 많거나 고온지역에서도 고장이 거의 없어 전세계 어디에서나 애용된다.

전체길이 87㎝에 총신길이는 41.6㎝, 강선은 사조우선()이다. 빈 총 무게는 4.3㎏, 30발 탄창을 끼우면 4.876㎏으로 다른 소총에 비하여 무거운 편이지만 반동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 총구()속도는 초속 710m, 최대 발사속도는 분당 600, 발사방식은 단발과 연발이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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Михаил Калашников - 2009
2007년의 미하일 칼라시니코프

미하일 티모페예비치 칼라시니코프(러시아어: Михаил Тимофеевич Калашников, 로마자: Mihail Timofeevič Kalašnikov, 1919년 11월 10일 ~ )는 러시아의 무기 설계자로, 돌격소총 AK-47을 발명하였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1919년 러시아 알타이지방의 쿠루야라는 마을에서 18형제 중 한 명으로 태어났고, 중학교를 졸업한 후 시베리아철도에서 철도공으로 일하다가 1938년 소련군에 입대하여 전차병으로 복무했다. 이때부터 기계의 설계, 제작에 재능을 보여 전차포의 발사탄수 계측기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1941년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여 독소전이 발발하자 전차장으로 싸우다 브리얀스크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후송되었고, 부상이 나은 후에 카자흐스탄 소재의 부대로 배속되어 복무하는 중 신형 기관단총을 설계하여 상부에 제출하였다. 이 설계안 자체는 결함이 많아 채택되지 않았으나, 총기 설계의 재능을 인정받아 국영 조병창으로 배치되어 총기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소련군은 대전 말기 독일군의 신형 돌격소총 MP-44(STG-44)에 깊은 인상을 받아, 그와 비슷한 신형 돌격소총을 장차 소련군의 주력 개인화기로 삼을 계획을 세웠는데, 칼라시니코프가 설계한 소총이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아 소련군 제식 소총으로 채택되고 AK-47이라고 명명되었다. 이 공로로 1949년 스탈린훈장을 수여받고, 1951년에 육군상사로 군을 전역한 후에도 이즈베스크조병창의 주임 설계관으로 일하면서 AK-47의 개량형 소총 AKM, RPK 분대지원화기, PK 기관총소련군의 주력 총기들을 설계했다.

이러한 공적으로 금성훈장 2회, 레닌훈장 수여와 함께 1969년에는 육군대령계급이 수여되었다. 1971년에는 비록 대학을 다니지는 못했으나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공학박사 학위가 수여되었다.

소련이 붕괴되고 러시아체제가 수립된 후에도 이즈베스크조병창이 민영화된 이즈마쉬사의 주임 설계관으로 재직하였다.

1994년, 75세 생일 축하 선물로 보리스 옐친 당시 러시아 대통령으로부터 종신 육군 중장계급을 수여받았다.

러시아 군의 정년은 60세이므로, 칼라시니코프는 사실상 최고령 러시아군 장군인 셈이다.

그의 아들, 손자들도 그의 뒤를 이어 총기 설계에 종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1]

M16을 개발해 재벌이 된 미국의 유진 스토너와 달리 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당시 소련 제도 때문에 월 55만원쯤 되는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으며, 생활고를 타개하기 위해 최근 자기 이름을 붙인 보드카 판매에 나섰다고 알려져 있다.[2].

2009년 11월 10일(his 90th birthday) 러시아 대통령 메드베데프는 칼라시니코프에게 러시아 영웅 칭호를 수여했다.

[편집] 일화

1997년에 칼라시니코프는 라이벌이자 M-16돌격소총의 개발자인 유진 스토너와 만났다.[3]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개발한 소총을 보며 서로 평가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의 AK-47 돌격소총과 유진 스토너의 M-16 돌격소총은 둘 다 동구권과 서방세계를 대표하는 소총으로서 둘 다 각각 1억정이 넘게 제작 및 판매되었다.

[편집] 같이 보기

[편집] 주석

  1. <<칼라시니코프 소총과 러시아 군용총기·특수부대>>. 호비스트, 2008
  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7/08/2007070800608.html 문갑식, 《조선일보》칼럼 〈만물상〉]
  3. 딴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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